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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가는데 30분 걸려… "'교토의 불국사' 옮겨버리고 싶어" 하소연

입력
2023.08.31 15:00
수정
2023.08.31 18:37
5면
0 0

<사라진 마을 : 오버투어리즘의 습격>
<4> 다가오는 관광의 종말
'관광 공해' 피해 큰 일본 교토 가보니
관광객, 팬데믹 전 80% 수준까지 회복
보복 관광에 교통난 등 시민 불편 가중
장소·시간대별 혼잡도 제공해 분산 유도
'비수기' 겨울에만 출입 제한 신사 열기도

편집자주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18일 오후 일본 교토의 관광 명소인 아라시야마의 대나무숲이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교토=박지영 기자

18일 오후 일본 교토의 관광 명소인 아라시야마의 대나무숲이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교토=박지영 기자


기요미즈데라(清水寺)를 뚝 떼어다 다른 곳에 옮겨버렸으면 좋겠어요.

19일 일본 교토에서 만난 중년 남성은 심란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말했다. 기요미즈데라는 '고도'(古都) 교토의 상징과도 같은 사찰이다. 경주 시민이 '불국사를 다른 도시로 옮겨 버리고 싶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폭탄 발언인 셈이다. 명소를 찾는 관광객 탓에 발생하는 '관광 공해'가 교토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짐작하게 했다.

"유명 사찰 인근에서 차로 100m 이동하는데 30분 걸려"

교토의 관광업계는 코로나19 '악몽'에서 빠져나온 분위기다. 시 관광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이 도시를 찾은 내외국인 관광객은 4,000만 명대로 팬데믹 이전 수준(5,000만 명)의 80%까지 회복했다. 교토 시모교구 사무실에서 만난 호리 다쿠야 관광협회 마케팅관리팀장은 "올해는 코로나 전의 90% 수준까지 올라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일본 교토시 내·외국인 관광객 수. 그래픽=강준구 기자

일본 교토시 내·외국인 관광객 수. 그래픽=강준구 기자

사람들이 몰려오는 건 교토 시민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통 대란이다. 호리 팀장은 "미도리 버스(교토시 버스 이름)에 관광객이 너무 많이 타서 정작 출퇴근이나 등하교해야 하는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기요미즈데라 근처에서 일하는 다부시 신야(68)는 "사찰 주차장은 금세 만차가 돼 관광버스가 도로 위에서 여행객을 내려주는 일이 흔하다"면서 "퇴근하려면 주차장에서 큰 도로까지 100m를 이동해야 하는데 30분이나 걸린다"고 했다. 그는 "기요미즈데라에 관광객이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혼네'(本音·진짜 속마음)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이지만 인내심의 임계치를 넘어선 듯 보였다.

19일 일본 교토의 유명 사찰인 기요미즈데라 인근 거리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노란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길을 건너고 있다. 교토=박지영 기자

19일 일본 교토의 유명 사찰인 기요미즈데라 인근 거리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노란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길을 건너고 있다. 교토=박지영 기자

실제 기자가 18~19일 돌아본 교토의 주요 관광지에서는 무질서한 모습이 여럿 눈에 띄었다. 전통가옥이 군락을 이룬 기온 거리에는 '함부로 사진을 찍지 말라'거나 '길을 막고 서 있지 말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일부 관광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중국인은 빨간 기모노를 입은 어린 마이코(게이샤 수련생)를 촬영하려다 제지당했다.

일본 교토의 기온 거리에 설치된 '사진 촬영 금지' 안내판. 일부 관광객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코(게이샤 수련생) 사진을 찍으려 했다. 교토=박지영 기자

일본 교토의 기온 거리에 설치된 '사진 촬영 금지' 안내판. 일부 관광객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코(게이샤 수련생) 사진을 찍으려 했다. 교토=박지영 기자


소음 줄이려 안간힘 "역에서 호텔까지 캐리어 옮겨드립니다"

교토시 당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시민 편의가 가장 중요하지만 교토는 관광으로 먹고사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시 재원의 12.8%가 숙박세에서 나온다. 또, 교토 시민 5명 중 1명이 관광업에 종사한다. 관광객이 안 오면 시민 20%의 경제 여건이 악화한다는 얘기다. 호리 팀장은 "관광객 수는 현재 수준을 유지하되 1인당 소비액을 늘리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토시의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대응책 중에는 우리 당국이 눈여겨볼 만한 것도 제법 있다. 혼잡도 예측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위치 데이터와 날씨 정보 등을 결합해 기요미즈데라, 교토역, 아라시야마 등 인기 관광지 7곳의 혼잡도를 5단계로 예측하고 분석해 마치 일기예보처럼 관광객들에게 보여준다. 사람들이 너무 몰리는 곳은 알아서 피하라는 메시지다. 이 시스템을 통해 향후 2개월 후 혼잡도까지 내다볼 수 있다.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야마다 사치(왼쪽) 교토시 관광국 계장과 호리 다쿠야(오른쪽) 교토시 관광협회 마케팅관리팀장. 교토=박지영 기자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야마다 사치(왼쪽) 교토시 관광국 계장과 호리 다쿠야(오른쪽) 교토시 관광협회 마케팅관리팀장. 교토=박지영 기자

교토시는 또 여행객들이 유명 관광지 위주로 특정 시간이나 계절에만 몰리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분산 정책을 편다. 예컨대 하루 중 덜 혼잡한 오전 관광을 권하며 '아침에 걷기 좋은 자갈길'을 소개한다. 비수기인 겨울에는 평소 출입할 수 없는 신사를 공개하기도 한다. 야마다 사치 교토시 관광국 계장은 "오전 관광을 지속적으로 홍보한 결과 기요미즈데라를 아침 일찍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소음 등 관광 공해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고 세세한 해결책도 내놓고 있다. 야마다 계장은 "캐리어 끄는 소리 탓에 괴로워하는 시민들이 많다"면서 "교토역에서 1,000엔(약 9,000원)을 내면 호텔까지 캐리어를 옮겨주는 '핸즈 프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관광의 역습 - 참을 수 없는 고통, 소음> 인터랙티브 콘텐츠 보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2517140000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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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박지영 기자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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