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 의견조회에 "추가 검토" 회신
"사형제 병존 땐 일반범죄에도 선고 위험"
"범죄 종류 한정·조건 명시 등 면밀 검토를"
흉악범죄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제도에 대해 대법원이 사실상 반대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형 제도가 현행법 체계에 엄존하는 상황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도입하면, 사실상 무기징역을 대체해 형량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게 대법원 논리의 핵심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형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의견 조회 요청에 따른 의견서를 최근 제출했다. 30일 한국일보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의견서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선진국에서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무기금고 포함)에 위헌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폐지하는 추세"라며 "이 제도의 도입은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도입은 현재 두 갈래로 추진되는 중이다. 국회는 조정훈 의원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개정안을 법사위에서 논의하고, 법무부는 별도의 개정안을 14일 입법예고했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사형제 폐지 여부와 무관하게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사형제를 유지하는 전제하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도입하는 경우, 일반 범죄에까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선고가 확대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대체하게 되고, 결국 전체적인 형벌 수위만 높아진다는 우려다. 의견서에 따르면 미국의 워싱턴·플로리다·캘리포니아주 등에선 살인뿐 아니라 교통사고 범죄에도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있다. 미국 8개 주의 경우,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 중 30%가 비살인 범죄자다.
또한 법원행정처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도입하더라도 △그 범죄 종류를 한정하는 방안 △선고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 △양형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사의 재량에만 맡길 게 아니라,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는 범죄를 구체적으로 법에 박아야 한다는 취지다. 최고 형량인 사형은 선고될 수 있는 범죄가 살인·내란 등 일부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현재 추진되는 방안은 무기징역이 내려질 수 있는 범죄의 종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는 그대로 둔 채 가석방 금지 여부만 판사가 판단하도록 하는 형태여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선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선고만으로 사실상 사형과 다름 없는 효과가 날 수 있다.
이런 사법부의 의견은 "사형제 폐지와 무관하게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도입하겠다"는 정부 및 일부 국회의원의 입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의 진통도 예상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희가 추진하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은 사형제의 존치 여부와 무관하게 함께 두자는 취지"라며 "법관이 죄질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양립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발의자인 조정훈 의원도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신설은 피해자와의 연대이고, 정의 실현의 문제"라며 "피해자의 보복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