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은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당시 엄청난 화제와 충격을 몰고 왔다. 빙하기에 소멸한 공룡을 유전자 기술로 살려내고 공룡의 서식지를 조성하여 인간이 사파리 여행을 즐기도록 한 아이디어는 신선했고, 이를 실행에 옮긴 과학의 힘은 놀라웠다. 그 이후 등장하는 재난적 에피소드들은 결국 인간의 과학적 지식은 완벽하지 않으며 자연은 통제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최근 기후 위기로 빙하가 녹으면서 4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이 시베리아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허구적 상상력으로 살려낸 공룡 이야기가 실현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정해놓은 틀 속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를 놓고 안전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과연 완벽한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는 건 특정 패러다임 속에서의 증명일 뿐 진실은 아니다. 과학적 지식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정될 것이다. 완벽한 과학적 판단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그 무엇으로 인해 우리는 흡사 후손들에게 '쥬라기 공원'을 물려주게 될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은 풍요롭고 편리해졌지만, 자연과 지구를 파괴한 논리와 힘 역시 과학기술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회복력 시대'에서 기후 위기에 직면한 인류가 존속하려면 '회복력(resilience)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효율성이 아니라, 성장을 멈추고 인간이 더 이상 지구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효율성을 적응성으로 바꾼다는 의미는 뭘까. 살인적인 무더위에 에어컨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더위는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생태를 파괴하고 위험한 원전 건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말이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 국내 20여 개 기업은 벌써부터 기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선언했다. 삼성전자도 작년에 합류했는데, 정작 국내에서 쓸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 때문에 RE100 선언을 계속 미뤄왔다고 한다. 이 마당에 정부는 기왕 건설된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축소하고 위험 시설인 원전을 되살린다고 하니 지구의 미래를 살리기 위한 국제적 흐름에도 역행한다. 회복력이 아닌 효율성 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오염수 방류라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1,000회가 넘는 핵실험으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주범이 되어 온 미국이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를 지지한다고 나선 건 나쁜 일 같이 할 패거리 만들기에 다름 아니다. 미국과 일본은 핵 실험과 오염수 방류로 인류에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 우리는 과학기술을 앞세워 자연을 파괴해온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자연 앞에, 인류의 미래 앞에 겸손해야 한다. 일본은 지구의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을 멈춰야 한다. 과학을 앞세워 반생태적 행위를 옹호하는 일도 멈춰야 한다. 진보의 시대를 회복력의 시대로 바꾸어나가는 건 그나마 회복할 수 있을 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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