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쟁점법안 처리 목적 많아
전문성은 뒷전, 입법 기능 약화 우려
우리나라 국회는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표방한다. 실질적인 법안 심사가 이루어지는 상임위를 국회의 꽃이라 부르는 이유다. 국회법상 상임위 임기를 2년으로 정한 것에는 국회의원 임기 전·후반기로 나눠 전문성을 쌓아 상임위에서 의정활동을 펼치라는 취지가 반영돼 있다.
21대 국회서 5곳 이상 상임위 거친 의원만 52명
본보가 3일 국회 '열린국회정보'에 공개된 국회의원들의 상임위 경력을 분석한 결과, 통상 원내지도부가 겸임하는 운영위와 매년 구성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포함한 각종 특위를 제외하더라도 21대 국회에서 5개 이상 상임위를 거친 의원은 52명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여러 상임위를 거치는 의원들은 '원포인트' 사보임을 활용한다. 이해충돌 등의 개인 신상 문제가 불거져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청문회 저격수나 쟁점법안 처리 등의 정치적 필요로 이동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전문성을 길러 양질의 법안을 만들고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상임위 임기를 보장하는 국회법 취지가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청문회 저격수, 안건위원장 등 정치적 목적 '사보임'
21대 국회에서 상임위를 많이 거친 국민의힘 의원으로는 김기현 대표와 권성동 의원(각 9회)이었다. 김 대표는 전반기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활동하다 단 사흘간(2021년 10월 18~20일) 정무위로 옮겼다. 당시 '이재명 저격수'였던 박수영 의원이 경기도청 국정감사에 나설 수 있게 행정안전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올해 4월에는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정무위원회에서 국방위로 옮겼다. 4·5 재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의 상임위 배치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상임위 중 결원이 있는 곳은 국방위가 유일한 만큼 강 의원 배치가 유력했지만, 여권에서는 강 의원의 친북 행적을 문제 삼으며 국방위 배치를 반대하면서 윤 원내대표가 총대를 메야 했다.
민주당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 4월 18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를 위한 사보임이 이뤄졌다. 민주당은 최고령 의원이 안건조정위원장을 맡는 관례를 이용하기 위해 당시 국방위원회에 속해 있던 김진표 의원(국회의장 선출 전)을 법제사법위로 배치했다.
최근에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청문회를 대비하기 위해 교육 전문가인 강득구, 서동용 의원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이 후보자 인사청문 과정에서 핵심 의혹 중 하나였던 자녀의 학교폭력 의혹을 집중 추궁하기 위해 전진 배치된 것이었다. 이후 서 의원은 2주 만에 청문회를 마친 뒤 교육위로 원대복귀했다.
상임위 전문성 갖춰야 국회 기능 강화
1년 임기인 예결위와 원내대표 교체 시기마다 바뀌는 운영위를 제외하면 의원 간 상임위 맞교대가 가장 자주 이뤄진 곳은 행안위(30회)였다. 정무위(24회), 국토교통위(23회) 등도 상대적으로 의원들이 선호하면서 사보임이 잦은 상임위로 꼽힌다. 전문성 강화보다는 지역 현안 등을 염두에 두고 득실을 따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인 이유로 (상임위를) 왔다 갔다 하면 전문성을 쌓을 수 없어 입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상임위 중심주의로 흘러가야 입법이라는 국회의 주요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잦은 사보임은 의원의 전문성을 떨어뜨려 정책 역량 강화를 통한 입법은 물론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등의 의회(국회)에서 상임위를 잘 바꾸지 않는 경향과 대조적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전문성이 있더라도 특정 상임위만 고집하기 어려운 관행도 존재한다. 예산과 사업이 많아 지역 표심 확보와 재선에 유리한 국토교통위원회나 교육위원회 등의 '인기 상임위'를 나눠 맡아야 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이유로 횡행하는 사보임은 국회법 취지에도 반한다. 국회법 제48조 6항은 임시회의 경우 회기 중에 위원회를 옮길 수 없고, 정기회의 경우에도 30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에 한해 의장의 허락을 받으면 교체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지만, 사유를 검증하는 실질적인 과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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