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환경 도시의 명암
편집자주
5,000년간 한반도와 살을 맞대 온 중국. 한국과 비슷한가 싶다가도 여전히 다른 중국. 좋든 싫든, 앞으로도 이웃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중국. '칸칸(看看)'은 '본다'라는 뜻의 중국어입니다. 베이징 특파원이 쓰는 '칸칸 차이나'가 중국의 면면을 3주에 한 번씩 보여 드립니다.
'시진핑의 도시'라 불리는 곳이 있다. "중국식 사회주의" "중국식 개혁·개방" 등 유독 '중국식'을 열망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뜻을 받들어 "중국식 현대화 건설의 선봉장"이란 명함이 빛나는 곳. 수도 베이징에 이어 또 다른 천년고도를 꿈꾸는 곳. '슝안(雄安)신구'가 그 주인공이다.
중국은 2017년 4월 베이징에서 남서쪽으로 100㎞ 떨어진 곳에 총 면적 1,770㎢(서울의 약 3배) 규모의 초대형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허베이성의 슝현·안신현·룽청현 등 세 지역을 하나로 묶어 '포화 상태'인 베이징의 비(非)수도 기능과 약 500만 명의 인구를 이전할 수 있는 국가급 도시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완공 목표 시점인 2035년까지 약 400조 원의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된다. 시 주석은 이 사업을 "천년대계 국가대사"라고 선언하고, 최우선 국책 사업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덩샤오핑의 '선전', 장쩌민의 '푸둥'... 시진핑에겐 '슝안'
슝안신구 건설은 단순한 초대형 신도시 개발이 아니다. 시 주석의 정치적 위상과 직결된 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5년여 전 슝안신구 프로젝트 발표 당시 "선전경제특구와 상하이 푸둥신구에 이어 새 도시를 건설하는 중대한 역사적 전략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덩샤오핑은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광둥성 선전을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국제도시로 키워 냈다. 불모지였던 상하이 푸둥 지역은 장쩌민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중국 금융시장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1980년대 '덩샤오핑의 선전'이 있었고 1990년대 '장쩌민의 푸둥'이 있었다면, 21세기엔 이와 비견될 시 주석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야망이 슝안신구에 숨어 있다. 시 주석이 그리는 꿈의 도시를 지난달 28일 미리 둘러봤다.
슝안신구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친환경 스마트 도시'를 지향한다. 모토는 △도시 면적 70%의 녹지(또는 호수)화 △3㎞ 간격으로 숲 조성 △300m마다 공원 조성 등이다. 실제 도시 곳곳에선 세계 최고의 친환경 도시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도로 양쪽은 3~4m 간격으로 가로수가 빽빽했다. 아파트 단지 내부는 물론, 단지와 단지 사이에 크고 작은 산림 공원들이 들어서 있었다. 도심 스카이라인 확보를 위해 아파트 높이는 11층을 넘지 않았고, 도시 미관을 고려한 듯 각종 상점 간판도 모두 갈색 바탕으로 통일돼 있었다. 초고층 빌딩으로 가득 차 삭막한 기운을 내뿜는 중국 대도시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가로수엔 'QR코드', 도로엔 청소 로봇... 가까운 미래 도시
슝안신구의 행정 기능을 담당할 슝안시민서비스센터(시민복무중심) 지구는 행정구역이라기보다 산림 공원에 가까웠다. 수목이 더 많은 면적을 차지했고, 기업인과 공무원이 사용할 관사는 나무와 연못으로 둘러싸여 '숲속 펜션'을 떠올리게 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는 QR코드가 붙어 있었다. 스마트폰을 갖다 대자 나무 종류와 식수 연도, 관리자 이름이 표시됐다.
슝안신구의 또 다른 자랑은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스마트 체계다. '슝안신구 규획 요강'을 보면, △주요 인프라 90% 이상 스마트화 △디지털 경제 비중 80% 이상 △도시 관리 부문에서 빅데이터의 기여율 90% 이상 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교통, 주차장, 쓰레기 처리시스템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영역에서 무인화 시스템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입주민이 아직 적은 탓인지 휑한 느낌의 도로에선 7인승 자율주행 버스가 오가고 있었다. 시범 운행 기간이라 운전사가 탑승한 '반자율' 상태였지만, 도시 완공 이후엔 모든 슝안 주민들이 '운전사 없는' 이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자율주행 버스가 지나간 자리엔 '미래 도시'를 미리 보여주겠다는 듯, 사람 크기의 청소 로봇이 연신 도로를 쓸고 있었다.
3연임 넘어 초장기 집권 야망이 슝안을 관통
시 주석은 '대만족'을 표시했다. 지난 5월 10일 그는 리창 국무원 총리, 차이치 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딩쉐상 상무부총리, 허리펑 부총리 등 최고 지도부를 이끌고 슝안신구 중간 점검에 나섰다. 시찰을 마친 뒤 시 주석은 "지난 3년간 세계가 큰 변화와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동안, 이처럼 정교한 현대 도시를 쌓아 올린 건 기적"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슝안신구 건설은 천년대계이자 전적으로 옳은 행동"이라며 "2035년까지 더 많은 국영 기업과 금융기관, 연구소, 공공기관 등의 본사를 (슝안신구로) 이전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2035년을 완공 목표로 못 박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2020년 샤오캉 사회(의식주 걱정 없는 사회) 건설 달성을 선언한 시 주석은 2035년과 2049년을 각각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의 완성 시점으로 설정했다. 슝안신구를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의 유력한 증거로 삼겠다는 의도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3연임(2023~2027년)을 넘어, 2035년을 관통하는 초장기 집권에 대한 야망까지 엿보인다.
"대홍수에도 슝안신구만은 끄떡없다"
그러나 시 주석의 정치적 열망이 담긴 슝안신구는 최근 뜻하지 않은 허점을 드러냈다. 홍수로 인한 침수 위험을 피하려면 주변 지역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다.
지난 7월 말 제5호 태풍 독수리가 몰고 온 폭우는 허베이성 중남부와 베이징시 곳곳을 물웅덩이로 만들었다. 허베이성 주민 123만 명이 긴급 대피해야 했고, 특히 피해가 컸던 바오딩시 줘저우에선 무려 1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슝안신구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도심의 한 식당 주인에게 "홍수 피해는 없었냐"고 물었다. 답변은 놀라웠다. "다른 곳은 다 피해를 입어도 이곳은 문제없다. 국가가 최우선 순위로 관리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실제 허베이성 중남부가 홍수에 허덕일 동안, 슝안신구는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불과 70㎞ 떨어진 줘저우 지역에선 주민 5분의 1이 이재민이 된 반면, 슝안신구에선 별다른 홍수 피해가 보고되지 않았다. 허베이성 중남부 전체가 침수 피해를 입었는데, 폭우가 슝안신구만을 피해 갔을 리도 없다.
주변 지역에 '민폐' 끼치는 친환경 도시
"정부가 슝안신구를 보호하기 위해 홍수 물길을 임의로 조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허베이성 당국은 태풍 상륙 당시 허베이성 저수지 수문 7개를 단계적으로 개방했는데, 그 이후 줘저우시 피해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지질학자인 판샤오는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줘저우의 수량을 조정하면 하류로의 물길 이동을 지연시킬 수 있다. 이는 슝안신구에 대한 홍수 충격을 이완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초 홍수 물길은 슝안신구의 바이양뎬 호수를 향하고 있었는데, 이를 슝안이 아니라 줘저우로 흐르도록 조정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쉬홍장 호주국립대 교수도 "당국이 새로운 홍수 통제 시스템을 고려했다면, 슝안을 향한 홍수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줘저우 지역으로 물을 방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급 프로젝트인 '슝안신구 건설'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줘저우를 희생시켰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니웨펑 허베이성 당서기의 발언은 더욱 가관이었다. 그는 허베이성 홍수 피해가 극에 달했던 지난달 3일 "(줘저우 지역이 포함된) 바오딩시는 베이징, 슝안신구와 인접해 있어 홍수 방지 임무가 중요하다"며 "허베이성의 해자(垓字) 역할을 결연히 수행하기 위해 물을 제어하는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해자'는 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곽 주변을 파헤쳐 만든 수로를 뜻한다. 베이징과 슝안신구를 '성'에, 바오딩시 등 허베이성을 '수로'에 각각 비유한 것이다. 홍수 당시 슝안신구 보호를 위한 임의적 수량 조절 조치가 있었다고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뒤집어 설명하면, 주변 도시의 희생이 없었을 경우 슝안신구도 막대한 침수 피해를 입었을 것이란 얘기가 된다. 2017년 슝안신구 환경영향평가에 나섰던 중국과학원(CAS)은 당시 보고서에서 "슝안이 풍부한 토지와 자원을 보유한 장점이 있지만 높은 홍수 위험, 지표수 오염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도 슝안신구가 침수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슝안신구가 '친환경 도시'로 꾸며지는 동안, 정작 주변 지역은 기후위기 피해를 뒤집어쓰는 일이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친환경 도시'라는 오명을 벗는 게 슝안신구가 직면한 새 과제가 됐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