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컴퓨터 교육 시간 SW 교육만으로도 빠듯
PC교육 없어지며 디지털 시대 '기초체력'도 부족
PC 없는 저소득층에선 수업 쫓아가기도 어려워
2000년대 초반 이후 출생 세대의 개인용컴퓨터(PC) 활용 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길게 보면 PC가 다른 모바일 기기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나 전문가들은 상당 기간 PC를 이용해 문서 작업을 하는 행태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PC 관련 교육을 내팽개친 채 갑자기 소프트웨어(SW) 교육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면서 생기는 혼란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 전문가들은 SW 교육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기초 PC 교육과 SW 교육을 당분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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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교육 방향성은 맞지만 PC 기본 교육도 여전히 필요"
한국컴퓨터교육학회 제7대, 8대 회장을 지낸 안성진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교육 과정은 10년, 20년을 내다보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적어도 5년 이상은 PC를 활발히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당분간 PC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을 과도기로 보면서 기초 PC 교육 아니면 코딩 교육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는 식의 결정이 아닌 중요도에 따른 적절한 교육 시간 배정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체계에서는 PC 교육과 SW 교육이 함께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초등학교는 실과 교과에서 5, 6학년 2년 동안 17시간 이상, 중학교는 정보 교과에서 3년 동안 34시간 이상 정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초중고교 12년 동안 51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해외 주요 국가에 비해 턱없이 적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은 405시간(프로그래밍 등 정보 활용 수업 포함), 영국은 374시간, 인도는 256시간, 중국은 212시간을 정보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이에 2022년 개정 교육 과정부터는 초등학교 6년간 34시간 이상, 중학교 3년간 68시간 이상으로 의무 시수를 두 배 늘렸다. 해당 교육 과정은 2024년부터 초·중·고등학교에 차례로 적용된다. 안 교수는 그러나 "초등 6년 동안 34시간은 코딩 교육만 진행하기에도 부족하다"며 "기초 PC 교육을 넣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다"고 현장의 한계를 전했다.
때문에 현재는 PC 활용 교육은 포기하고 코딩 교육조차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워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두 교육이 함께 가기 위해 '초등 정보 교과 독립'이라는 근본적 해결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고교는 독립된 '정보' 과목이 있는 반면 초등 교과 과정에서는 정보 교육이 '실과'에 속해 있다. 안 교수는 "초등 정보 교과 독립으로 충분한 시수를 확보해 1, 2학년 때 기초 PC 활용 능력을 길러주고 이후 SW·AI 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보를 직접 입력하고 분석하는 '디지털 리터러시' 약화
SW 교육 중심으로 바뀐 뒤 미래 디지털 시대의 기초 체력인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이 외면받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정보를 찾고, 이를 분석·이해하며 잘못된 정보를 구분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컴퓨터교육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김미량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정보 교육이 SW·AI 등 컴퓨터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정보를 실제로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의 중요성이 간과됐다"고 지적했다.
과거 초등 정보 교육에서는 키보드로 타자를 치면서 읽고, 쓰고, 듣는 연습을 했다. 또 워드·엑셀·파워포인트 등의 프로그램으로 자료를 만들며 정보를 분석·이해했다. 이 자체가 기초 PC 활용 교육이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디지털에서 내가 정보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건 그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라며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학습 결손으로 학생들의 한글 문해력 자체가 낮아진 상황이기 때문에 디지털과 결합한 리터러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집에 PC 없어 타자 칠 줄도 모른 채 중학교 들어가
공교육에서 PC 활용 교육을 놓다 보니 예기치 못한 '빈부격차' 문제까지 나타나고 있다. PC를 보유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이 타자를 칠 줄 모르는 상태로 중·고등학교에 올라가 팀 프로젝트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등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만 13세 이상 5,155명을 대상으로 컴퓨터 보유율을 조사한 결과 월평균 가구 소득이 600만 원 이상인 경우 81%가 데스크톱·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반면 300만 원 미만인 경우 보유율이 각각 29%, 23%로 크게 떨어졌다.
김병순 안동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IT 기기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학생들을 고려해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기초 컴퓨터 사용법과 활용을 가르쳐야 한다"며 "초등학교에서 디지털 기초 소양을 쌓은 학생들은 중학교에 가서 기초 활용 교육을 받는 데 드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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