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 플랫폼 노동자의 그늘: 300명 심층 설문조사 해보니>
조사 진행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인터뷰
"61% 아파도 일해, 상병수당·실업급여 도입 필요"
"플랫폼 기업은 '일한 만큼 벌 수 있다' '내가 원할 때 일한다'는 환상을 만들었다. 실상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이다."
김종진(50)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한국일보와 진행한 '플랫폼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지난달 31일 이렇게 요약했다. 자유로운 일자리라는 포장지를 걷어내면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아파도 일해야 하는 열악한 현실이 드러난다는 비판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20여 년 몸담은 김 소장은 현재 일하는시민연구소에서 플랫폼과 프리랜서 같은 불안정 노동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플랫폼 노동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특징은.
"고소득이 아니다. 월평균소득이 최저임금(올해 201만 원)에도 못 미치는 156만 원이다. 특히 남성이 많은 직업군과 여성이 다수인 직업군의 소득 차이가 두 배에 달했다. 남성 중심인 배달·대리운전 등은 월평균 215만 원인데, 여성 중심인 번역·가사 등은 110만~130만 원이었다. 기존 산업의 남녀 임금 격차가 플랫폼 노동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런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플랫폼 노동이라고 하면 뭔가 새로운 산업처럼 보인다. 사실은 저임금에 사회적 안전망이 없고 성별 임금 격차가 큰 기존 노동시장의 특징이 확인된다. 이런 점에서 기존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플랫폼 노동문제 해결과 맞닿아 있을 수 있다. 기업과 플랫폼 노동자가 상생하는 방안을 찾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 개선이 왜 이뤄지지 않나.
"그나마 남성 노동자가 많은 쿠팡, 배달의민족 등 배달·운송 직업군은 노동조합이 조직됐다.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니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그나마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여성 중심인 직업군은 당사자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어 제도 개선을 요구할 주체가 없다.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하다. 이처럼 목소리 없는 이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어떻게 개입해야 하나.
"고용보험, 상병수당, 교육훈련 등을 보편적으로 제공하면서 업종별 정책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업종마다 상황이 달라서다. 가령 플랫폼 가사 노동자는 육아휴직 뒤 노동시장에 진입한 경력 단절 여성이 많다. 이들은 육아를 하기 때문에 휴가권이 중요한 정책이 된다. 또 이번 조사에서 아파도 일하는 노동자가 61%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아파도 쉴 수 있도록 상병수당과 실업급여를 적용해야 한다."
-'내가 일한 만큼 버는 게' 플랫폼 노동이다. 정부가 개입해야 하나.
"더 많이 일할수록 더 번다는 생각은 플랫폼 기업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임금도 최저임금 노동자와 별 차이가 없고 퇴직금·연차휴가·각종 사회보험·교육 훈련비 정도만 놓고 봐도 임금노동을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 사실 플랫폼 노동의 다수는 저숙련 단순 노동이다. 20여 년 전 외환위기 사태(IMF) 때는 은퇴자들이 했던 배달, 대리기사를 지금은 청년이 한다는 게 차이다. 이런 노동자를 저비용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산업은 더욱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정부가 노동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유럽연합(EU)은 이미 회원국에 플랫폼 노동자를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하게 하는 지침안을 의결했다. 플랫폼 노동자를 기업에 속한 노동자로 인정해 각종 복지를 제공하라는 얘기다. 스페인이나 프랑스도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을 인정하고 미국 뉴욕과 시애틀은 아예 최저임금을 보장한다. 우리나라는 플랫폼 산업이 활성화된 것에 비해 관련 정책은 걸음마 수준이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생기는 문제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 비용을 떠안는다. 기업은 아무런 부담도 지지 않는다. 임금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인 고용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은 회사와 노동자, 정부가 나눠서 부담한다. 플랫폼 노동에서는 모두 개인 몫이다. 정부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노사정 대화기구에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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