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주의 '동물복지 이야기'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보이는 사자의 영상이 공개되면서 동물학대 논란을 일으킨 부경동물원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소위 '갈비 사자'라 불렸던 주인공은 ‘바람이’라는 이름을 받고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져 순조롭게 적응 중이다. 그러나 부경동물원에는 바람이의 딸인 어린 암사자를 비롯해 호랑이, 흑표 등 60여 마리 동물이 남아있다. 동물원은 비판 여론 속에 휴원 중이고, 동물들을 매각할 곳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들이 굶주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먹이를 공급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동물들은 지금 갈 곳이 없어서 발이 묶인 상황이 아니다. 사자 ‘바람이’를 데려간 청주동물원은 여러 차례 남은 동물들도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도 동물원 운영자가 소유권을 포기한다면 내년에 문을 여는 야생동물보호시설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부경동물원 운영자는 동물 소유권을 포기할 생각은 없으며 매각할 곳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영업자의 기대처럼 동물을 구매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민간 동물원을 찾는 건 힘들다. 오는 12월, 전부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이 시행되면 기존 동물원 등록제가 허가제로 전환되면서 각 동물 종별 사육시설 기준 및 인력 기준 등이 한층 강화된다. 그리고 이 기준을 충족하는 시설만 허가를 받아 운영할 수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해 운영되는 100여 개 동물원들도 5년 유예 기간 내에 새로운 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춰 재허가를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시설은 지금 보유하고 있는 동물만 계속 사육하려 해도 시설 개선이 불가피할 것이다. 즉, 앞으로 새로운 동물원을 개장하는 것도, 기존 동물원에서 동물을 늘리는 것도 어렵게 된다는 이야기다. 설사 데려가겠다는 곳이 있다고 해도 지금 국내 민간 동물원의 시설 수준은 부경동물원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 실내에서 운영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동물들이 다른 민간 동물원으로 옮겨진다 해도 당장 굶지 않는 것 외에 그다지 나아질 것이 없다.
운영자가 동물들을 매각할 곳을 찾는 동안 시민사회 등 공공의 자원으로 먹이 비용을 대는 게 옳은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운영자가 앞으로 동물 관련 영업에서 손을 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가까운 예시로 식용견 농장주에게 전업을 지원하는 활동을 보자. 이 활동의 전제 조건은 당연히 농장주가 영구히 개농장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지난 6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 또한 개들에 대해 동물보호센터나 민간동물보호시설로의 이관 등 법으로 정한 방법으로 처분 계획을 제출했을 때만 폐업지원금을 지원한다. 동물의 먹이 값도 조달하지 못할 정도로 소유자의 책임 무능력이 입증되었는데도 사유재산이라서 동물에 대한 권리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조건에서 시민 모금이나 국민 세금으로 ‘제값을 받고 팔 때까지’ 보호 비용을 지불하는 게 올바른 일인지 의문이다.
사업자는 언론에 ‘코로나19 정부 정책에 따라 강제로 영업을 중단해야 했고, 관람객 발길도 끊기면서 적자가 너무 심각해졌다’며 동물을 열악한 환경에 방치한 것을 코로나19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일부 언론은 ‘수입업을 하며 모은 잉여 동물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는 운영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며 마치 부경동물원이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야생동물 보호소라도 되는 양 보도했다. 그러나 운영자의 동물 관리 수준은 코로나 발생 전부터 다르지 않았고, 한국의 수많은 열악한 동물원들 중에서도 가장 동물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시설로 손꼽혀 왔다. 이때까지 동물을 성심성의껏 살뜰히 돌보다가 코로나19로 하루아침에 열악한 환경에 노출시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이 사람은 경남 김해시뿐 아니라 대구시에 두 곳의 동물원을 추가 보유하던 전력도 있다. 장사가 잘 되어서 영업점을 몇 개씩 늘려나가는 동안 왜 동물들의 처우는 전혀 개선이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해당 운영자가 운영하던 대구의 한 동물원은 지난해 국제적 멸종위기종 8종을 법령 기준에 미달한 기준에서 무단 사육하고, 폐사한 기린을 톱으로 해체하여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동물원 호랑이에게 먹이로 준 혐의로 동물원수족관법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대표의 지시에 따라 낙타를 톱으로 해체한 직원은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운영자 소유의 다른 동물원도 휴원에 들어갔지만 동물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관리 감독의 의무가 있는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시설의 동물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부경동물원 동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영업자가 동물을 판매할 곳을 찾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면서 사회 각지에서 먹이 값을 대는 것이 아니라, 동물원 관리에 책임이 있는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동물원이 모여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내년 야생동물보호시설이 완공될 때까지 공영 동물원 등에서 동물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들이 안전한 국가 시설로 이송되는 일에 부경동물원이 동의해 준다면 이송되는 시점까지 보호 비용은 시민들이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경동물원 사태 같은 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동물에게 복지는커녕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도 제공하지 않은 채로 상업적 목적을 위해 사용해도 아무 제재를 할 수 없는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보호하는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개편한다고 하는데, 동물이 사지가 부러지거나 죽어야만 학대로 인정하는 현재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는 발의된 지 2년이 넘도록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동물 비물건화’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동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돌봄을 제공할 의무도 함께 부여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동물을 학대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향후 다른 동물의 소유를 제한해 다른 동물이 또 다른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강화된 제도가 시행되고 시민인식이 성장하면서 문을 닫는 수준 미달 동물원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근본적인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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