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상대로 3억원 손해배상 청구
전두환 정권 시절 정보기관이나 경찰의 사주를 받은 프락치(비밀 정보원)는 어디에나 있었다. 학교에도 있었고, 회사에도 잠입했으며, 군대 안에도 프락치가 있었다. 정권은 프락치 활동을 못 하겠다는 이들에게까지 강압과 고문까지 가해가며, 조직 내 비밀을 정보기관에 일러바칠 것을 강요했다.
40여 년이 흘렀지만 이들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5공화국 당시 군에 입대한 후 고문을 받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재판에서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의 경험을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 황순현)는 6일 박만규·이종명 목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박 목사는 1983년 9월 육군 보안사령부 분소가 있는 경기 과천시에서 구타와 고문을 당한 후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 박 목사는 "입대 후 두 차례에 걸쳐 30일 정도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으며 구타와 불법감금을 당한 일은 제 인생에서 큰 짐이 됐다"며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적 행위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학군군간부후보생(ROTC)이었던 이 목사도 보안사에 연행돼 1주일 넘게 조사를 받으며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안사에서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하고 고문당하는 등 죽음의 문턱을 오갔다"며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의 일이 생생해 트라우마가 됐고, 그 일이 없었다면 장교로 복무해 가족을 부양하며 평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전두환 정권이 비밀리에 추진했던 녹화(綠化)사업의 피해자들이다. 보안사는 머리에 든 '빨간 물'을 푸르게 물들이겠다며 학생운동 가담자 등을 강제로 군에 보냈는데, 강제 입대시킨 이들을 비밀 정보원으로 삼아 군과 학교의 움직임을 감시하도록 강요했다.
전두환 정권의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은 지난해 5월부터 진행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화위) 조사 결과로 드러났다. 진화위는 국군방첩사령부(당시 보안사)가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개인별 존안자료 2,417건 등을 분석해,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 관련자 2,921명의 명단을 확인했다. 강제징집 및 프락치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된 당사자는 총 187명이다.
정근식 진화위원장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집 피해자들은 국방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한 후 다시 사회와 격리됐다"며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회복조치 및 재발방지책으로 병역법 등을 개정해 권리보장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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