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국적 K팝의 정체성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성상민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한때 ‘K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찰하던 시절이 있었다. K팝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던 2000년 전후만 해도 K가 이렇게 큰 개념이자 의미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정했을 리 없다. 무려 국가명을 음악 장르에 붙여버리는 과감함. 깊은 고민 없이 자리 잡은 이 단어는 결국 가장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대중음악을 뜻하는 팝(Pop) 앞에 붙은 K를 설명하기 위해 한국인의 얼과 한, 궁상각치우까지 들먹이며 K를 찾게 했다. 여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국내외에 존재하는 그 어떤 칼럼니스트나 관계자도 K를 시원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K팝의 K는 지금도 변하고 있다. 이것만이 유일한 참이었다.
K팝을 정의하는 게 어려워진 건, 이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요소가 점차 한국이라는 경계를 벗어나면서부터였다. K에 집착해 K팝을 ‘한국에서 한국인이 만든,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팝 음악’이라 결론 내리는 순간, K팝의 시계는 무한한 과거로 돌아간다. 일명 K팝 조상님이라 불리는 H.O.T.나 S.E.S.의 활약부터 살펴보자. 이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해외는 교포까지만 세련 포인트로 활용하는 데 그쳤지만, 해외 진출을 향한 의지는 한 번도 감추지 않았다. 재일교포 슈와 재미교포 유진이 멤버였던 S.E.S는 데뷔 3개월 만에 일본 시장을 정식으로 노크하기 시작했고, H.O.T.는 히트곡을 중국에서 앨범으로 발표한 최초의 한국 가수였다. ‘아시아의 별’ 보아가 일본에서 거둔 놀라운 성취나 BTS(방탄소년단)가 비로소 이룬 한국 대중음악의 아메리칸드림은 지금도 한참이나 현재진행형이다.
시장 범위를 세계로 넓힌 K의 전진은 거침이 없었다. 플레이어의 면면도 급격히 변해갔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일본 출신 해외교포가 마지노선이었던 K팝 그룹의 멤버 다양성은 2010년대로 진입하면서 모든 제한을 거뒀다. 2010년대를 대표하는 보이 그룹 엑소는 한국 멤버로 구성된 엑소-K와 다수의 중국 멤버를 포함한 엑소-M으로 나누어 데뷔했다.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등 한국과 지리·심리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 멤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만계 미국인, 중국계 캐나다인, 베트남계 호주인 같은 다양한 국적 조합도 다수였다.
K가 ‘KOREA’의 이니셜인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뜨거운 감자가 되기 일쑤인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그룹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JYP엔터테인먼트와 소니뮤직재팬이 공동 기획한 오디션 프로그램 ‘니지 프로젝트’ 출신 9인조 걸그룹 니쥬나 보이그룹 달마시안 출신 프로듀서 재이콥스가 제작 및 프로듀싱해 만든 일본 걸그룹 엑스지는 해당 테마가 언급될 때마다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는 대표적인 팀들이다. K팝 최초 흑인 멤버 영입으로 화제였던 걸그룹 라니아가 재데뷔한 블랙스완의 사례는 어떤가. 세네갈계 벨기에인, 브라질에서 태어난 독일인 등 한국과 전혀 관련이 없는 멤버로만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을 K팝 그룹이라 정의한다. 누가 이들을 K팝이거나 K팝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무대 위에 서는 플레이어만 두고 설왕설래하는 분위기도 조심스럽다. 한 사람의 재능과 힘만으로는 절대 성립할 수 없는 이 재능 집약적 산업구조 아래서 음악, 퍼포먼스, 프로듀싱 및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제 한국이나 한국인 여부로 K를 논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K팝의 K를 깨끗하게 정의하는 건 아직은 먼 이야기다. 다만 K팝이 이미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K팝에 K를 새긴 한국은 이 변화무쌍하고 근본 없는 음악 및 문화 사조의 발원지에 가깝다. K팝이 한국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며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이들의 마음은 불안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바꿔 말해 K라는 그릇 안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확장성을 담보해 나가는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이것만이 K’라는 주장으로 가득 찬 세상과 ‘이것도 K’라는 목소리도 존재하는 세상. 둘 가운데 어디가 더 아름답고 자유로울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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