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왕조 후손 화산 이씨, 봉화 대대로 정착
충효당 등 화산 이씨 13세손 이장발 유적
베트남 다문화 가족 수시 방문, 교류 활발
지난 5월 경북 봉화군 창평리 충효당에서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20여 명의 여성이 양손에 연꽃 모형을 들고 앞마당을 도는 등 ‘꽃의 춤 예식’을 펼쳤다. 한ㆍ베트남 양국의 어린이 15명도 애국가와 베트남 국가를 번갈아 부르며 우의를 다졌다.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장발(1574~1592)의 충성심과 효심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이장발은 화산 이씨 13세손이다.
그렇다면 화산 이씨와 충효당이 베트남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경북 봉화와 베트남의 인연은 약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리 왕조는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난 첫 독립 왕조였다. 외세 침략에 시달리다 사상 처음으로 독립국이 된 만큼 베트남 역사에서 리 왕조는 국가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정신적 지주인 호찌민 주석도 생전에 리 왕조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
화산 이씨의 시조인 이용상이 바로 리 왕조 6대 영종의 아들이다. 이용상은 1224년 쿠데타를 피해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에 정착했다. 베트남 첫 ‘보트피플’인 셈이다. 그는 고려에 귀화해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고, 그의 둘째 아들 이일청이 안동부사로 부임, 봉화에 정착했다. 이후 이일청의 후손들은 봉화읍을 비롯해 춘양면, 물야면, 봉성면 등 봉화 일대에 대대로 살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린 화산 이씨의 후손들을 각별히 대한다고 한다.
화사 이씨 13세손인 이장발은 19세의 나이로 임진왜란 의병으로 참전해 문경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장인이 시신을 거둬 이곳 창평리에 묻었다. 광해군은 이장발 사후 30년 만인 1622년 통정대부 공조참의에 추증(사후 관직을 내리는 일)했고, 그 후손과 유림들이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50년 충효당을 건립했다. 충효당은 베트남 리 왕조와 관련한 국내 유일의 유적지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6호이다. 이 일대에는 충효당 외에도 이장발을 기리는 유허비(선대의 자취가 남은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산소,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 보존돼 있다.
봉화군은 베트남 사람들에겐 추앙의 대상인 리 왕조와의 역사적 인연을 연결고리 삼아 ‘K베트남밸리 조성사업’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곳을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관광과 문화, 교육 콘텐츠가 자유롭게 오가는 핵심 기지로 만드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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