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 :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1>2만 7,013일의 기다림
치매 실종자 가족 11명, 애끓는 인터뷰
기약 없는 기다림 "죽음보다 더한 고통"
치매 실종 신고 1만4,527건...10년 새 2배
"그날 되돌릴 수 있다면..." 찾고 또 찾아
뼛속 그리움 "오늘도 문 밖을 내다 봅니다"
편집자주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치매 실종 경보 문자. 매일 40명의 노인이 길을 헤매고 있다. 치매 실종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관심하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치매 실종자 가족 11명의 애타는 사연을 심층 취재하고, 치매 환자들의 GPS 데이터를 기반으로 배회 패턴을 분석했다. 치매 선진국의 모범 사례까지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이지윤(65)은 하염없이 문밖만 쳐다봤다. 남편은 한 달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생사조차 알 수 없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집 안에 그 사람 흔적은 남아 있는데, 남편만 사라진 겁니다. 산으로 갔는지, 바다로 갔는지, 공중부양됐는지 알 수도 없어요. 그냥 증발해버렸어요."
지윤의 시간은 남편이 사라진 7월 22일 오후 3시 30분에 멈춰 있다. 지윤은 "모든 게 일시 정지됐다"고 말했다. 남편이 없으니 종이 달력도 7월을 넘기지 못했다. 치매를 앓던 남편 박승원(66)은 매달 말일이 되면 달력을 뜯었다. 밥 먹는 것도 잊을 만큼 서서히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도, 유일하게 까먹지 않던 습관이었다.
"남편이 돌아와서 뜯어줄 거니까요.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거죠."
그렇게 지윤은 남편이 사라진 그날의 '흔적'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마저 지워버리면, 승원이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돼버릴까 봐 두려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속인까지 찾았지만, '무사히 곧 돌아온다'던 주문은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얼마나 더 버텨야 불안과 절망의 시간이 끝날지 누구도 답을 주지 못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어떤 느낌일까. 지윤은 "죽음보다 무섭고, 더 두려운 고통"이라고 했다.
"이 더운 날에 밥도 물도 못 먹고, 누가 데려가서 험한 일이라도 시키는 건 아닐지···." 별의별 나쁜 상상을 하다 보면, 남편이 어디선가 겪고 있을 고통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지윤은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게 낫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매일 혼잣말을 해요. 해가 뜨고 지고 세상은 이렇게 멀쩡한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 간 거야? 어디 갔길래, 왜 아직도 안 오는 건데?" 바짝 마른 입술 아래로 지윤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배회 중인 OOO씨를 찾습니다.'
오늘도 당신 휴대폰에선 치매 노인을 찾는 실종 경보 문자가 울렸을지 모른다. 경찰에서 보내는 하루 평균 발송 횟수만 3.97번. 누군가에겐 일상의 집중을 깨트리는 불편하고 귀찮은 알람일지 모르나 소중한 부모와 배우자를 잃어버린 가족들에겐 온몸이 으스러질 만큼 간절한 외침이자, 뼛속에 사무치는 그리움의 신호다.
대한민국에서 지난해 실종된 치매 노인 신고 건수는 1만4,527건.(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실) 10년 전보다 딱 2배 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9.8명(일평균)의 치매 노인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이 안전하게 가족 품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박승원씨처럼 기다림이 길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년이면 치매 환자가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치매 실종'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두 달 동안 전국을 돌며, 경찰청 '안전드림'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를 토대로 실종된 치매 노인 54명(7월 22일 기준)의 가족을 접촉해 인터뷰를 시도했고, 긴 설득 끝에 11명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치매 어르신들은 왜 실종됐고, 마지막 행적은 어디였을까. 왜 우리 사회는 골든타임 안에 그들을 찾지 못했을까. 11명의 어르신이 사라진 지, 2만7,013일째. 이 기사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앞으로 어디선가 사라질 또 다른 치매 어르신들의 안전한 귀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 내려간 '다시 쓰는 실종 보고서'이다.
<1> 실종 - 그날, 되돌릴 수만 있다면
① 박승원 - 자전거를 매일 기다립니다
지윤은 꿈에도 몰랐다. 그 짧았던 통화가 남편 승원과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왔는데 문을 닫았어." "그래? 그럼 집으로 얼른 와요."
7월 22일 오후 5시 52분.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수화기 너머로 승원의 시무룩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전거를 고치러 간다며 집을 나선 지 2시간 만이었다. 8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남편은 혼자서도 동네(대전 유성구 지족동)를 곧잘 다녔다. 헤맬지언정, 집도 잘 찾아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불운이 겹쳤다. 승원은 휴대폰 사용을 불편하게 여겨 전화기가 없었다. 매번 가던 동네 수리점이 문을 닫자, 승원은 집에서 10km나 떨어져 있는 도룡동까지 무작정 페달을 밟아 달렸다. 치매에 걸린 뒤 승원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집착이 심해졌다. 지윤이 저녁 찬거리를 사러 장을 보고 왔지만, 문 앞에 세워져 있어야 할 남편의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안 온 거야?" 자전거는 남편의 '발'이었다. 30대 중반에 당한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진 남편은 외출할 때마다 자전거를 탔다. 치매에 걸린 뒤로도 남편에게 자전거는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기억은 희미해져 갔지만, 손과 발에 새겨진 감각은 아직 남아 있었다.
'분신'이나 다름없는 자전거가 없으니, 남편도 없는 거였다. 매일 지옥 같은 밤이 흘렀다. 야속하게도 남편이 사라진 밤부터 대전에는 일주일간 비가 내렸다. "실종이란 말은 바다에서 배가 뒤집어지는 사고에서만 쓰이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했죠. 오늘은 제발 자전거가 보이기를, 그래서 남편이 집에 돌아와 있기만을 기도할 뿐이에요." 지윤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1>실종 - 그날, 되돌릴 수만 있다면
② 김영수 - 마지막 인사는 아니겠죠?
죽음보다 더한 고통.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박성희(72·가명)는 2년째 보내고 있다. 2021년 7월 20일 아침, 남편 김영수(현재 77세)는 유난히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고지식하고 진중하던 남편답지 않은 과한 표현이었다.
노인 주간보호센터를 다닌 지 열흘째 되던 날. 센터 차량을 함께 기다리던 성희는 영수의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온 걸 뒤늦게 알아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까 봐 그대로 태워 보냈다. 실향민 출신의 대기업 직원이던 남편과, 교사였던 성희는 누구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했다. "손주 재롱 보며 평안한 노후만 남은 줄 알았는데···." 부부의 소박한 바람은 그날 오후 4시 20분쯤 걸려온 다급한 전화 한 통에 산산조각이 났다.
"할머니! 어르신이 안 계세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요!" 오후 5시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마중 나가려 준비하던 성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보호센터는 관리에 소홀했다. 남편이 혼자 밖으로 나가는데도 내버려뒀다. 영수는 걸음이 빨랐다. 계단을 통해 지하 주차장으로 빠져나왔지만, 삼전오거리(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집 방향(종합운동장)이 아닌 남쪽 탄천 방향(대치동)으로 직진했다. 영수는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보다 방향 감각을 더 빠르게 상실했다.
"걱정할 거 없어. 여기 서울 시내 한복판이야. CCTV가 몇 개인데." 성희는 금방 남편을 찾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성희는 벌써 세 차례나 남편 없는 여름을 맞고 있다. 삼전동 주변 탄천1교를 헤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편은 흔적도 없이 증발됐다. 보호센터와 불과 7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 일로 센터는 3개월간 문을 닫았다. 요양보호사 한 명이 환자 7명을 봐야 하는 돌봄 과중 속에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날 아침 남편은 왜 그렇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을까요. 지금도 그 모습이 계속 아른거려요. 마지막 인사는 아니었겠죠? 그렇게 믿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담담했던 성희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2> 수색 -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③ 이은혜 - 부산을 걷고 또 걸었다
"재홍 할아버지 만나 보니 너무 마음 아팠죠? 건강하신가요? 그간 너무 많이 애쓰셔서···."
부산영도경찰서 위정아 112치안종합상황팀장은 기자에게 김재홍(74·가명) 할아버지의 안부를 물으며, 3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2020년 겨울 끝자락, 위 팀장은 부산의 한 거리에 서 있는 재홍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어르신은 자기 몸만 한 피켓을 앞뒤로 짊어지고, 쏟아지는 인파 속에 파묻혀 있었다.
"우리 집사람입니다. 한번만 잘 봐 주이소. 이름은 이은혜." 하지만 가족과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려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은 어르신의 애타는 손길에 눈길 한번 안 주고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이은혜 할머니는 절대 잊히지 않아요. 할아버지가 1년 동안 너무 가슴 아프게 찾으셨거든요." 위 팀장은 이은혜(현재 70세)씨 실종 사건을 담당하며 직접 수색에 나선 경찰이었다.
2020년 4월 11일, 이 할머니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주말 점심 모임을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기에, 아내를 두고 혼자 외출한 게 화근이었다. "내가 빨리 갔다 올게. 얌전히 콩 놀이하고 있어요."
단단히 문단속을 하고 40분 만에 후다닥 돌아온 집에 아내는 없었다. 경비원이 투표(그날은 21대 총선 사전투표 마감일이었다)를 하러 다녀오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는 오후 2시쯤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8년 전 치매에 걸린 아내는 유독 배회 증상이 심했다. 처음엔 머릿속에 입력된 목적지가 또렷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아내는 동네 교회를 가겠다고 나섰다가 길을 잃고 부산 전역을 헤맸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뒤죽박죽될 수록 '외출'은 과감해졌다. 친정 엄마가 있는 울산, 태어나고 자란 양산을 가야 한다며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아무 버스에나 올라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계속되자, 재홍은 용돈벌이를 위해 나섰던 일(공공근로)을 그만두고 아내를 돌보는 데 집중했다. 요양원 입소도 알아봤지만, 배회 증상이 심하다며 거부당했다.
"아내가 길을 헤매더라도 찾는 데 하루를 넘긴 적은 없었으니까... 내가 너무 방심했던 거지."
재홍은 연신 본인 탓을 했다. 아내의 마지막 행적은 사하구 홍티예술마을에 위치한 아트센터. 주변은 공장지대와 폐가가 많아 밤이 되면 인적이 매우 드문 곳이다. 은혜가 사라진 날은 아트센터 인근 낙동강 포구에서 낚싯배도 띄우지 않을 만큼 궂은 날씨였다. 재홍은 "경찰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며 연신 고마워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수색은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재홍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산 전역을 혼자 누볐다. "내 짝지를 내가 포기하면 누가 챙기겄어요. 안 그래요?"
그는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 확인된 홍티예술마을 근처 무지개공단을 밤낮으로 돌며 주차된 차량마다 전단지를 붙였다. 아내가 자주 헤맸던 노포동 터미널부터 부산 최대 규모의 녹산공단, 부산역, 롯데백화점, 부산에서 유명하다는 5일장과 사찰, 공원까지. 사람이 좀 붐빈다 싶은 부산바닥마다 재홍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오늘 전단지 500장 돌리겠다고 마음먹으면 다 돌릴 때까진 집에 안 들어왔어요. 이건 집사람을 찾고자 하는 내 마음이고, 소망이고, 약속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돌아올 수가 없지요."
두 아들은 이제 그만하라고 아버지를 말렸지만, 재홍은 단호했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지 않겠나.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제." 그사이 재홍의 기력은 약해졌고, 다리도 불편해졌다. 하지만 재홍은 매달 11일이 되면 아내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홍티예술마을 인근 포구를 찾는다. 거짓말처럼 아내가 나타날 것만 같아서다.
<2> 수색 -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④ 이정산 - 완도를 다 뒤졌지만, 없었다
"누구 찾아오셨어? 그 집 아들 서울에 일하러 갔어요."
전남 완도 신지면 월양리 주민들은 3월 19일 실종된 이정산(78) 할아버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르신 찾는다고 마을 전체가 나섰지. 안 뒤진 데가 없는데…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참 답답한 노릇이지 뭐여." 마을 이장은 안타까움에 고개를 떨궜다.
"어촌 계장님은 서울로 돈 벌러 갔어요. 아부지가 우찌 됐는가 모르는디 여기 있기 아무래도 힘이 들지 않겄어요."
6일 뒤 이정산 할아버지의 아들 이성윤(58)을 만난 곳은 서울 경동시장 부근이었다. 성윤은 7월부터 청량리역 경전철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겄어요." 검은 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쓰고 나타난 성윤이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내며 앉았다. 눈시울은 이미 벌게져 있었다.
무뚝뚝했지만 아들은 효자였다. 1년 전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자, 성윤은 광주에 아내를 두고 고향 완도로 혼자 내려왔다. 그는 다시마 양식장을 운영하며 아침저녁으로 혼자 계신 아버지를 들여다봤다. 사달은 친구 딸 결혼식을 보러 천안에 다녀오느라 완도를 잠시 비운 사이 벌어졌다.
"형님, 작은아버지네 불이 꺼져있네. 이상허요!" 사촌동생은 걱정했지만, 성윤은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도 장에 가셨을 거여, 오늘 장 서는 날이잖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른 아버지의 집은 컴컴했다. "밤에도 불을 켜두는 양반인데 불 꺼두고 어디 가신 거지." 불안해진 성윤은 부리나케 마을 방송 마이크를 켰다.
한 집 건너면 서로 아는 작은 어촌마을. 정산 어르신의 실종 소식에 103가구가 모여 사는 월양리는 발칵 뒤집혔다. 주민들은 조를 짜서 경찰과 밤낮없이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다. 경찰 인력만 279명이 투입됐다.
마을에서 열 수 있는 문은 다 열어놓고 확인했다. 동네 사람들 협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축양장, 빈집, 창고, 재래식 화장실까지 싹 들여다봤다. 완도에선 처음으로 드론과 헬기를 띄우고, 잠수부를 동원해 저수지까지 훑고, 배를 띄워 먼 바닷가까지 나가봤지만 소용없었다.
"일주일간 전쟁을 치렀죠. 골든타임이 3, 4일이라던데, 사람은 안 보이고. 봄철 내내 그렇게 안 오던 비가 아버지가 실종되니까 오더라고요. 그것도 열흘 내내. 정말 돌아버리겠더라고요."
마을 사람들은 1년간 걸어 다닐 거리를 열흘 동안 걸었다고 할 만큼, 자기 일처럼 수색 작업을 도왔다. "기동대 팀장이 마지막으로 어디 가고 싶은 데 없냐고 묻길래, 없다고 했어요. 여한 없이 다했으니 이제 그만하자고. 아버지 마음 가 있을 곳은 다 돌아봤으니까 더 이상 갈 데도 없더라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윤은 혹시나 아버지를 찾았다는 연락이 올까 싶어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산다. 바다에서 일할 땐 전화기 자체를 들고 다니지 않았던 그였다.
서울에 올라온 건, 살기 위해서였다. "동네 사람들도 나 애릴까 봐(아릴까 봐) 일부러 아는 척을 안 하는 거예요. 말 거는 것도 조심스러워하고. 그러니까 더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어디 가서 악이라도 쓰고 싶은데 못 하니까요."
그는 완도가 너무 그립지만, 완도를 내려갈 엄두는 못 낸다. "완도 가면... 우리 아부지가 없는 거잖아요. 그걸 다시 확인하는 게 사실 너무 무섭습니다." 누구보다 강해 보였던 성윤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어린 아이처럼, 금세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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