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형된 부대원 임성빈씨 상소권 회복
3년간 가혹 훈련…기간병 살해 뒤 사살·자폭
"상고 포기 시 생계 책임" 믿었다 사형 집행
군 당국 회유 탓에 상고를 포기해 사형당한 실미도 부대(공군 제2325부대 209파견대) 소속 공작원이 51년만에 대법원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8부(김재호 김경애 서전교 부장판사)는 사망한 실미도 부대원 고 임성빈(당시 24세)씨의 여동생 충빈씨가 대리 청구한 상소권 회복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공군 관계자들이 임씨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못하도록 회유한 것이 인정된다며 이렇게 결정했다. 군검찰이 항고하지 않으면 이 결정은 확정돼 고인이 된 임씨가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된다.
북한 특수부대 '서울 침투' 후 만들어진 실미도 부대
임씨는 1968년 4월 실미도 부대의 부대원 31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됐다. 이들이 부여받은 작전명은 '오소리'. 임무는 김일성 주석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1968년 1월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서울에 침투한 '1·21 사건'이 터지자 박정희 정부가 보복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부대원들이 마주한 것은 3년 간의 가혹한 훈련이었다. 이 과정에서 7명이 사망했다. 남은 부대원은 열악한 처우에 항의하려 1971년 8월 공군 기간요원들을 살해한 뒤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했다.이 과정에서 20명은 군과의 교전으로 사살되거나 자폭했고 임씨 등 4명은 붙잡혔다.이들은 초병살해 혐의로 군사법원에 넘겨져 1·2심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고 상고하지 않았다. 이듬해 3월 서울 오류동의 한 공군부대에서 형이 집행됐다.
숨어있던 진실은 2003년 영화 '실미도'가 개봉하며 대중에 널리 알려졌고 사형된 4명의 신원도 공개됐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진실화해위는 당시 군 당국이 생존한 공작원들을 회유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게 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폐쇄적인 군사법원과 달리 대법원에 사건이 넘어가면 실미도 부대의 진상이 외부로 드러날 것이라는 우려 탓이었다. 군 당국은 생존 공작원들에게 "상고를 포기하면 전과를 말소해주고 월남전에 참전한 뒤 이후 생계도 책임지겠다"고 회유했다. 약속을 믿은 임씨 등은 국회 진상조사단 조사에서도 입을 다물었지만 상고 포기로 형이 확정되자 신속하게 처형됐다. 임씨는 사형 당시 유언으로 "너무나도 억울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웠다"며 "김일성의 목을 베지 못하고 죽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빈씨는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12월 법원에 오빠의 상소권을 회복해달라며 소송을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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