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S아파트 홍성준 경비원 인터뷰]
전횡·모욕 관리소장 버티기, “연말 경비원들 해고”
입주자 회장 직무정지, 소장이 새 회장 선거 막아
‘3개월 계약’ 내몰린 현실, “국회는 뭐하고 있나”
지난 3월 14일, 서울 강남구 S아파트에서 10여 년을 일한 경비원 박모씨가 투신 사망했다. 그는 두 명에게 유서를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이길재 경비대장, 그리고 자신이 의지했던 이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지난해 말 부임한 관리소장의 부당한 인사조치와 모욕적 발언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6개월이 흘렀다. 어떤 비극이 발생했을 때, 사건 그 자체보다 이후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되었는지는 사회 선진성의 척도일 것이다. 그런데 항의하던 경비대장은 해고됐고, 관리소장은 건재하다. 연말엔 경비원들의 무더기 해고도 우려된다. 동료 사망 후 울분 속에서 현장을 지켜온 홍성준(71) 경비원을 지난달 30일 만났다.
대통령실에까지 진정서를 넣었지만
그는 박씨를 ‘성님’이라 불렀다. “돌아가신 날부터 데모(집회)하면서 4월까지 총망라한 것을 잡지책 비슷한 크기로 진정서를 만들어서 11군데에 두 권씩 보냈어요. 경찰서, 노동부(고용노동부), 대통령실, 권익위(국민권익위원회)··· 관리실 운영 회사가 소관돼 있는 국토교통부에도 보냈어요. 6일 사이에 두 명이 죽었잖아요. 청소하는 아줌마(해고된 아파트 외곽 청소노동자로 심정지 사망)도요. 소속 업체(용역업체)는 달라도 다들 관리소장의 통제를 받아요.”
진정서에는 무엇을 담았을까. “상황이 이러하고 둘이나 죽었는데, (관리소장이) 안 나가고 저러고 있으니 도와달라 그거죠.”
홍씨는 관리소장의 갑질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는 정도였다”고 했다. “(24시간 근무 후) 아침 6시 10분에 퇴근해요. 다른 사람이 6시 오니까, 몇 마디하고 ‘빠이빠이’하고 가면 되잖아요. 6시 반까지 이 복장(경비복)을 입고 둘이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어야 돼요. 그리고 관리실 직원이 와서 사진을 찍어요. 그리고 정문에 퇴근 도장을 찍으러 가야 돼요. 줄 서서 도장을 찍고 30분 더 가욋일을 시켜요. 주차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면, 6명이 한 조로 아침부터 밤까지 정문에서부터 12동 꼭대기까지 50m 간격으로 일렬로 서가지고 앞사람이 ‘지금 2000번(차량번호) 들어갑니다’하면 다음 사람이 ‘지금 2000번 통과’···이거를 시켜요. 그리고 흰머리 있잖아요, 안 보이게 염색해야 해요.”
사직 압박에, “거꾸로 매달아 놔도 버틸 거다”
사망 사건 후 관리소장 문제를 제기하던 이길재 경비대장은 3월 말 해고됐다. 내부적으로 경비원들을 이끌던 홍씨에게도 느닷없는 ‘강등성’ 발령이 났다. 홍씨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5월 9일에 8동에서 1동으로 발령이 났어요. 내가 내부적으로 경비원들을 단속(규합)하니까, 사실상 내쫓으려 조치를 한 거지요. 8동은 (경비원)사무실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있어 근무하기 좋은 데죠. 제가 국어교사 출신이라 입주민 아이들에게 논술 교정해 주고, 한문도 가르쳐주고 했어요. 발령 난 뒤에 관리실에 가서 ‘나 그만두지 않아. 거꾸로 매달아 놔도 석 달은 견뎌’라고 직원들 앞에서 터뜨리고 왔어요.”
관리소장은 군 출신이라고 한다. “지휘관이 오면 안 하던 것까지 하는 것처럼, 주민들에게 ‘나 이렇게 일 잘한다’고 보여주기식 일을 해요. 그러니까 자기는 올라가고 우리는 힘든 거야.”
입주민들은 경비원들 편인데···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관리소장을 비호하자, 주민들이 투표를 해서 직무를 정지시켰다. 총 1,034가구 중에 450명이 투표에 참여해 무려 407명이 직무정지에 찬성했다.
“그게 두 달 전이에요. 그런데 회장이 자기는 안 나가겠대요. 회장 역할을 계속하려고 해서, 지난번 회의에서 주민들이 끄집어내고, 112신고도 했어요.”
지금 회장은 1년가량 되었는데, 지난해 12월 관리소장을 바꾸면서 경비원들의 비극이 시작됐다. 지금도 관리사무소는 새 회장을 뽑을 투표함 설치 등을 거부하고 있다. 주민들 요청으로 구청에서 ‘선거를 개시하라’는 공문을 내렸으나, 거부하고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구청에서 관리소장을 상대로 (아파트)동대표 선거 같은 선거관리위원회 업무를 집행해야 한다고 8월에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관리소장이 불복해 행정심판이 진행 중”이라며 “심판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래도 입주민들이 경비원들 편이라 다행인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5년 전에 경비원 일을 시작했고, 주민들이 참 존중해 줬어요. 사람을 하시(下視)하지 않아요. 이전 여성 입주자대표회장은 유서가 송고된 그 휴대폰을 안 써서 몰랐다가 한 달 후에야 우연히 열어보고 유서가 있어서 울었대요. 차기 회장 선거를 하면 나오겠다는 사람이 현직 교수님을 포함해 3명이 있어요. 회장 하면 골치 아프니까 다들 안 하려고 그러는데, (이 사건으로) 약이 올라서 하려고 해요. ‘안 되겠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연말에 무더기 해고가 예고됐다
홍씨는 말했다. “관리소장이 공공연히 말해요. 연말이 되면, 우리를 날릴 거라고(해고한다고). 경비 용역업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한다는 거죠.” 3개월 계약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경비원들은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국어교사를 거쳐 월간지 기자로도 일했다는 홍씨는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고 있다. “동력이 떨어져서 (동료 경비원들을) 민주노총에 가입시켰어요. 78명 중 지금 42명까지 가입이 늘었어요. 내가 보수언론에 있었고 서울 토박이인데 민주노총 물을 먹을 줄 몰랐어요. 그런데 약자한테는 아주 유용해요. 그리고 외롭지 않아, 내가 외롭지가 않아요.”
연말 해고를 막기 위해 10월부터 쟁의 신고를 하고 쟁의를 계획하고 있다. 보수적인 지역이다 보니, “민주노총이 웬말이냐”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단다. “‘(노조가)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의 권익을 찾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이해하십시오’하고 그렇게 많이 이해시켰어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거죠.”
경비원을 노예로 만드는 3개월 계약
그는 새벽 6시 10분부터 24시간(휴게시간 포함)씩 일하고 격일로 쉰다. 월 220만 원을 받는데 세금 떼면 실수령액이 207만 원이다. “항상 최저임금을 받았지요. 용역업체는 100원도 더 안 줘요.”
원청인 주민들이 정확히 경비원 1인당 인건비로 얼마를 주는지는 모르지만, 주민들이 꼬박꼬박 내는 경비원 퇴직금을 업체가 챙기는 경우가 많다. 중간착취에 가깝다. “(1년을 못 채우고) 퇴직하는 사람들의 퇴직금은 업체가 가져가요. 우리가 6개월 근무를 하면 퇴직금을 안 주는데, 그렇게 1년 안 돼서 그만두는 사람이 한해 10명은 나와요.”
그는 지난해까지 쭉 1년 계약이었다. 그것도 불안한데, 지금은 3개월 계약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노예계약이죠. 쓴소리를 하고 싶어도 3개월 계약 때문에 못하니까요. ”
사망 사건 이후 항의집회에 앞장섰던 이길재 당시 경비대장은 계약갱신이 되지 않고 3월 말에 해고됐는데, 만약 1년 계약이었다면 그는 여전히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홍씨는 한탄했다. “이걸 왜 국회의원들이 못하고 있는지(입법으로 바로잡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해가 안 가요. 최소 1년은 해야죠, 악덕 기업은 한 달 남겨놓고 트집 잡아 사람을 잘라요. 퇴직금 안 주려고.”
주민들은 습기 차오르는 지하 휴게실을 알까
그는 인터뷰 내내 입주민들에 대한 고마움을 말했다. 하지만 총 1,034가구 중에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직무정지 투표에 참여한 사람이 절반이 안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은 경비원들의 상황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아마 그들이 3개월 계약이라는 것도, 퇴직금을 가로챈다는 것도 ‘원청’인 주민들은 모를 것이다. 경비원들의 휴게실이 어디인지는 알까.
“오래된 아파트 지하에 석면도 있고 안 쓰는 공간인데, 거기가 휴게실이에요. 빗물이 올라오고 습해서 10분도 앉아 있기 싫지요. 노동청에서 요건을 갖추라고 하니, 보여주기 식으로 한 거죠. 한 명도 가서 안 쉬는데 휴게실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홍씨는 인터뷰 전날 열었던 집회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드라마 같지요”라고 했다. 동료 사망 이후 다섯 달째 매주 계속되어온 집회이다. 경비원들의 단체행동은 경비대장의 해고로까지 이어졌지만, 홍씨는 절대 질 수 없다는 각오를 밝혔다. 행정심판 결과가 빨리 나오고, 입주민들의 적극적인 개입만이 이들 경비원의 집단해고를 막을 방법으로 보인다.
보통 한국에서 갑질에 저항하는 비정규직들은 원청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 해고라는 결말로 내쫓긴다. 이런 익숙한 ‘K비정규직의 비극’을 S아파트의 경비원들은 비켜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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