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산불·2018년 폭염 등 기후재난 피해에
청소년 6명이 유럽 32개국에 '인권침해' 소송
27일 유럽인권재판소 최종심리 앞둬
“지구가 가장 더웠던 지난 7월 제가 사는 곳의 기온은 40도가 넘었어요. 정말 끔찍했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유럽 정부는 기후위기를 막을 책임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클라우디아(24)가 담담하게 말했다. 2017년 여름 그와 동생 마르팀(20)이 살고 있는 포르투갈 레이히아주에는 이상기후로 큰 산불이 발생했다. 남매는 이웃 120명이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같은 마을의 친구 2명과 2018년 기온 44도의 기록적 폭염을 겪은 리스본의 청소년 2명이 모여 2020년 9월 유럽 32개국을 상대로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소송을 제기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이들 국가의 더 빠른 온실가스 감축을 촉구하고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로부터 3년이 되는 오는 27일 ECHR 대재판부에서는 최종 심리가 열릴 예정이다. 긴 기다림 속에 원고 중 절반은 청년이 됐다. 심리를 2주 앞둔 지난 11일 오후 6시(현지시간) 온라인으로 만난 마르팀은 “터널 끝에서 빛을 보는 심정”이라며 기대에 차 있었다. 47개 회원국을 둔 ECHR의 대재판부 판결은 각국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구속력이 있고, 유럽의 변화는 전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199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 대비 55%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배출 정점(2018년) 대비 40%를 줄인다는 한국에 비해 과감하다. 하지만 원고들은 EU가 목표 비율을 최소 65%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과 같은 감축 속도로는 가장 어린 원고인 마리아나(11)가 88세가 되는 2100년엔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4도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온도가 2도만 상승해도 54%의 생물종이 멸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아도 원고들이 겪는 피해는 이미 막심하다. 이들은 특히 “기후 불안”을 거듭 이야기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드레(15)가 사는 리스본은 올해 2월부터 30도가 넘는 폭염을 겪었다. 안드레는 “너무 더워서 잠이 오지 않고, 갑작스러운 폭우로 학교에 걸어가지도 못한다”며 “식사 후 산책을 다니는 일상적인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한 뒤 코로나19 등 더 큰 위협이 발생했고 각국 정부의 태도도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긴급 조치를 취한다면 지구를 구할 방법이 있다”(안드레)고 믿으며 재판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에 기후헌법소원을 청구한 한국 청소년들에게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니 계속해 달라”(소피아·18)는 응원을 보냈다. 국내 청소년들은 한발 앞선 2020년 3월 기후소송을 시작했지만 헌재 심리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기 위해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소송은 지난해 기준 2,180건. 지난달 미국 몬태나주 청소년들이 주정부를 상대로 승소하는 등 각국 법원의 태도도 바뀌고 있다. 지난달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모든 국가는 국가의 작위나 부작위로 인해 발생한 환경 위협에 책임을 지고, 미성년 시민들이 법적 구제를 받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는 등 상황은 청소년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ECHR 대재판부는 포르투갈 청소년 사건과 함께 스위스 노인 여성 및 프랑스 의원이 낸 기후소송을 심리 중이며 빠르면 9개월 내에 판결을 내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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