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멘터리 K-인구 대기획 초저출생’의 예고편 ‘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 본 적도 없어요.” 한국의 합계 출산율(여성이 가임 기간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0.78명이라는 얘기를 듣고 연신 ”와우“라 외치며 머리를 움켜쥐는,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 모습 때문이다.
지난 1일 진행된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공청회는 2007년 국민연금 개혁 이후, 우리가 왜 그러한 길을 걸어오게 되었는지 보여준 산 증표라 할 수 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전액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초 연금은 선거 때마다 지급액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연금이 25년 동안 보험료를 단 1%도 못 올리다 보니 전체적으로 미래세대 부담만 늘려 놨다. 당시 공청회에서 18개의 재정안정 시나리오가 등장했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보험료를 15%로 6%포인트를 올리고 연금 받는 나이를 3년 더 늦춰도 재정안정 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연금제도가 지속 불가능함에도, 노후 소득 보장 수준을 높이는 것을 공적 연금 강화라고 주장한다. 제도가 지속돼야 소득 보장을 강화할 수 있다. 최근 독일과 스웨덴이 유럽연합(EU) 본부에 제출한 자료(Ageing Report)에 따르면 우리보다 보험료를 2배 더 부담하는 이들 나라의 소득대체율은 장기적으로 35% 전후로 예상된다. 소득대체율 42.5%에 보험료를 9% 부담하는 우리 국민연금과 크게 대비된다.
공청회 전후로 논란이 컸던 소득대체율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흔히 알려진 ‘50년 뒤에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26년 전후가 될 것’이라는 추정은 ‘평균의 함정’일 뿐이다. 국민연금공단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한 1970년생의 예상 가입 기간이 이를 말해 준다. 소득이 제일 낮은 소득 1분위는 19.4년, 소득이 제일 높은 소득 10분위는 33.9년 가입할 것으로 전망돼서다. 59세까지인 보험료 납입 연령을 64세까지로 5년 더 연장하면 고소득자의 가입 기간은 40년에 근접한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가 출범한 이유다. 64세까지 일하며 보험료를 낼 수 있는 방안들을 찾기 위해서다.
독일과 스웨덴은 이미 국민연금 평균 가입 기간이 40년을 넘었다. 일본도 65세까지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으면서 근로하는 노인이 전체의 70~80% 수준이다. 퇴직 후 재고용 형태로 근로소득과 함께 연금 가입 기간도 늘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50년 뒤에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26년밖에 되지 않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니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되는 우리 국민연금과 달리, 뼈를 깎는 개혁에 성공한 일본은 100년 뒤에도 국민과 공무원에게 연금 줄 돈이 있다.
우리 국민연금은 현행대로 40%를 유지해도 2093년에 7,750조 원 수준의 누적적자가 발생한다. 이 수치는 재정평가 기간인 향후 70년도 말인 2093년까지의 재정추계를 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수치다.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필자가 제안한 재정안정 방안인 ‘보험료를 15%까지 6%포인트 올리는 안’이 실행에 옮겨질지라도, 절반 수준인 3,770조 원만을 줄일 수 있다. 고통스러운 개혁에 성공한다 해도, 누적적자 절반이 넘는 4,000조 원을 후세대에게 떠넘긴다는 뜻이다.
어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연금연구회가 주관한 연금 세미나가 열렸다. “연금 개혁 어떻게 해야 성공하나: 세대 간 상생과 청년층의 외침”이 그것이다. 연금연구회 소속의 전영준 한양대 교수 발제 내용은 충격적이다. 2023년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가 1,825조 원(국내총생산(GDP)의 80%)에 달하고 있어서다. 2050년에 가면 GDP의 11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세미나에서 안철수 의원이 한 발언이다. “저희 의원실이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10%포인트 올리고, 보험료율은 12%까지 3%포인트 인상할 경우’, 2093년까지의 국민연금 누적적자가 1,404.4조 원(불변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행 40% 소득대체율에서 발생한 적자, 즉 7,750조 원에 1,404.4조 원이 추가된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적연금 강화방안이 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번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와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국민연금 누적 적자와 미적립 부채 공개를 거부했다. 재정 추계를 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누적적자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따져야 한다. 미적립 부채 계산 방법이 여러 개 있어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고 한다. 여러 방법으로 계산한 뒤에, 국민연금 운영 원리에 가장 부합하는 미적립 부채 규모를 이야기하면 되는 문제다.
세미나에서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추정치가 공개되자, 당장 ‘이 추정치는 현재 국민연금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의 추정치라, 국민연금이 처한 위기를 과장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적절하지 못한 비판이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현재 9%에서 내년에 당장 18% 이상으로 두 배 넘게 올리지 않는 한, 미적립 부채는 계속해 늘어나는 구조라서 그렇다. 공무원·군인연금의 충당부채가 매년 늘어나는 이유와 같다. 1년 만에 보험료를 두 배 이상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비판 자체가 국민연금이 처한 위험을 축소하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글로벌 추세와 다른 방향으로 연금 개혁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국민연금 누적적자와 미적립 부채를 공개하지 않다 보니 개혁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연금 개편 시나리오별 국민연금 누적적자 증감액 규모와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를 조속히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갈라파고스섬에 갇혀 국제 동향과 멀어져 가는 한국의 연금 개혁 논의 방향을 되돌릴 수 있다.
논란이 되는 노후소득 보장의 적절성은 소득 계층별로 이미 도입한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효과적인 정책 조합을 통해 달성하면 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할 수가 있다. 연간 보험료 총수입액이 국민연금 수준이며, 2030년에 1,000조 원에 달할 퇴직연금을 제외한 노후 소득 적절성 논의가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퇴직연금 대상자 53%가 퇴직연금에 가입했고, 이들 대부분이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효과적인 정책 조합을 통한 적절한 노후 소득 확보가 가능할 수 있다. 주요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장애 요인들을 제거해 가면서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처럼 하루빨리 국민연금을 소득비례 연금으로 전환해 국민연금에 성실하게 가입한 중간 이상 고소득층이 국민연금으로부터 안정적인 노후 소득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로 인해 연금소득이 하락하게 될 중간 이하 저소득층은 국민연금 틀 내에서의 보완 조치와 추가적인 소득지원제도를 통해 적절한 노후 소득을 확보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오래전부터 주요 선진국들이 해 오는 방식이다. 우리가 처음 시도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의 최근 연금 개혁 동향을 반영하면서, 포퓰리즘 정책들만 제대로 제어할 수 있다면, 이미 도입한 제도들의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모든 소득계층에 대한 노후 소득 확보가 가능할 수 있다.
지난 1일 공청회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 연금 논의가 너무도 한심해, 필자에게 전화했다는 90세도 넘은 김일천 전 복지부 국장의 말이다. “보험료와 세금을 제외한 소득을 기준으로 연금 소득대체율을 산정하는 독일·일본과 달리, 우리는 세전 소득 기준으로 소득대체율이 산정된다. 우리보다 보험료를 두 배 더 내는 독일과 일본의 연금액이 많지 않은 이유다.” 우리에 비해 사회보험료와 세금이 높은 유럽 국가들의 실제 소득대체율이 높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연금 관련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의 제도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개혁의 골든타임도 지났다. 나라 망친 세대라고 지탄받지 않을 조치를 취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정부는 국민연금과 관련한 부채 수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개혁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토론자로 참여한 박주하 전 서강학보 기자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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