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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닉계 농약, 미국·유럽선 규제... 우리는?

입력
2023.09.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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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기획취재공모전 우수상작
[꿀벌 집단 실종과 네오닉계 농약]
② 유럽·미국이 금지한 살충제, 한국은 규제 미비

편집자주

한국일보 제4회 기획취재 공모전에 당선된 우수상 2편을 게재합니다. ‘약Q정전’에서는 ‘성분명 처방’과 ‘상품명 처방’을 둘러싼 양측의 주장을, ‘꿀벌 집단 실종과 네오닉계 농약’에서는 네오닉계 농약 사용에 허점은 없는지 그 실태를 조명합니다.


지난 5월 4일 취재팀이 방문한 충북 청주시에 있는 김 모씨의 양봉장. 벌이 가득했어야 할 벌통이 비어 있었다.

지난 5월 4일 취재팀이 방문한 충북 청주시에 있는 김 모씨의 양봉장. 벌이 가득했어야 할 벌통이 비어 있었다.

4월 충북 제천시에 있는 홍공진(70)씨의 양봉장. 홍씨는 지난겨울 전체 벌통 300군 중 약 270군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피해를 봤다. 지난 5월 방문한 청주시 김모씨의 양봉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전체 330군 중 260군의 꿀벌이 겨우내 사라졌다.

이런 겨울철 꿀벌 집단 실종 현상은 2021년부터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한국양봉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초 한국양봉협회 소속 농가의 벌통 153만7,270군 중 무려 61.4%(94만4,000군)에서 꿀벌이 실종되거나 폐사했다.

유럽과 미국 등 해외 학계는 꿀벌 피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하는 주범 중 하나로 네오니코티노이드(이하 네오닉) 계열 농약에 주목한다. 네오닉계 농약은 살충 효력이 뿌리, 잎, 꽃가루 등 식물 전체로 운반돼 식물에 접근한 곤충들에게 독성을 일으킨다. 살충 효과가 뛰어나 세계 각국의 산림과 논밭에서 두루 사용된다. 1991년 독일의 제약회사인 바이엘이 첫 네오닉계 농약인 이미다클로프리드(IMI)를 출시했고, 2000년대 초 중국의 제약회사인 신젠타가 티아메톡삼(THM)을, 일본의 제약회사인 타케타가 클로티아니딘(CLO)을 출시했다.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2018년 2월 네오닉계 살충제 3종의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EFSA 홈페이지 캡처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2018년 2월 네오닉계 살충제 3종의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EFSA 홈페이지 캡처


꿀벌 위해성 확인돼...EU·미국에서 사용 제한

하지만 2004년 프랑스에서 꿀벌 피해가 처음 발생했고, 이후 네오닉계 농약이 꿀벌에 유해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유럽 양봉 농가와 환경 단체들은 유럽연합에 네오닉계 농약의 사용 규제를 촉구, 2013년 5월 유럽연합은 네오닉계 농약 3종(IMI THM CLO)을 유럽 전역에서 2년간 한시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15년 4월 유럽과학아카데미 자문위원회(EASAC)가, 2015년 11월에는 유럽식품안전청(EFSA)이 네오닉계 농약이 꿀벌에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를 잇달아 발표했다. 이에 2018년 2월 유럽연합은 3가지 네오닉계 농약의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이후 프랑스 등 몇몇 국가에서 일부 작물에 대한 네오닉계 농약의 사용을 ‘긴급 승인’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올해 1월 유럽사법재판소가 이를 불허하면서 유럽에서 네오닉계 농약의 사용은 계속 엄격해지는 추세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16년 이미다클로프리드(IMI)가 꿀벌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살충제 규제부(DPR)도 2018년 IMI, 클로티아니딘(CLO), 티아메톡삼(THM), 디노테퓨란(DTN) 4종이 꿀벌에 높은 위해성을 보인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일부 주는 네오닉계 농약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로드아일랜드주와 뉴저지주, 캘리포니아주에선 실외 사용을 금지했고, 올해 6월에는 뉴욕주가 작물 종자에 대한 네오닉계 농약 사용을 금지했다. EPA는 2024년까지 네오닉계 농약에 대한 최종 평가를 마무리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사용 제한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한국에서는 꿀벌 위해성이 높은 농약을 판매할 때 주의 문구와 그림 문자를 삽입해 농약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농약안전정보시스템 누리집 캡처

한국에서는 꿀벌 위해성이 높은 농약을 판매할 때 주의 문구와 그림 문자를 삽입해 농약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농약안전정보시스템 누리집 캡처


네오닉계 농약 규제 미비한 한국

하지만 유럽,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네오닉계 농약의 수입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작물보호협회가 2023년 7월 발간한 ‘농약연보’를 보면, 이미다클로프리드(IMI)의 수입량은 2018년 4만400㎏에서 지난해에는 6만1,490㎏까지 늘었다. 클로티아니딘(CLO)도 2018년 2만2,700㎏에서 2022년 3만4,075kg으로 늘었다.

국내 농약은 '환경생물 독성분야 시험'을 거쳐 정식 등록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 시 주의 사항을 명시한 문구가 제품의 포장지에 기입된다. 꿀벌에 유해한 농약의 경우 독성 정도에 따라 4단계로 나눠 기입하는데, 단계가 높을수록 살포 제한 기간이 길어진다. 1단계 주의사항 문구에는 특정 시기에 대한 언급 없이 '독성이 강하니 주의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2단계는 '개화 시기와 꿀벌 활동이 왕성한 시간‘에, 3단계는 ‘꽃이 피기(치사기간+2일) 전부터 꽃이 피어 있는 동안’에 살포를 제한한다. 4단계는 가장 긴 기간인 ‘봄부터 꽃이 완전히 질 때까지’로 제한한다.

한 네오닉계 농약의 포장지에 2단계 주의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농약은 꿀벌에 독성이 강하므로 꽃이 피어있는 동안이나 꿀벌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간에는 살포하지 마십시오’.

한 네오닉계 농약의 포장지에 2단계 주의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농약은 꿀벌에 독성이 강하므로 꽃이 피어있는 동안이나 꿀벌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간에는 살포하지 마십시오’.

2013년 유럽연합이 네오닉계 농약의 사용을 2년간 한시적으로 금지한 후, 같은 해 농촌진흥청은 국내에서 사용되는 네오닉계 농약 99개 품목을 대상으로 꿀벌에 대한 위해성을 다시 평가했다. 농약 사용 시기가 꿀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된 49개 품목의 네오닉계 농약은 경고문구가 기존 1~3단계에서 4단계로 강화됐고, 나머지 50개 품목은 그대로 유지됐다. 농진청은 주의사항 문구 강화 외에 유럽연합과 같은 사용제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농약사를 운영하는 업주들은 “농약에 주의사항 문구를 기입하는 현행 방식의 규제는 실효성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사용자 눈길을 끌기 어려운 데다 사용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경우 불이익도 없기 때문이다. 관련 농약 사용을 사용자 자율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농약, 누구나 쉽게 구매·사용 가능

한국에서 농약 구매 절차는 간단하다. 농약 판매점에서 구매자 이름ㆍ주소ㆍ연락처와 농약 품목명, 수량 등 일부 정보만 등록하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 충북 제천시의 한 농약사 업주는 “간혹 ‘문제가 생겨도 소비자 책임’이라는 서약서를 받기도 한다”며 “농가에서 농약을 잘못 써서 꿀벌이 죽어도 판매자 입장에선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농약 사용 농가들도 주의사항 문구를 따르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제천시에서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보통 3월에서 10월까지 열흘에 한 번은 농약을 뿌려야 하는데, 특정 농약을 두 번 이상 연속으로 뿌릴 수 없게 하는 농약 허용기준 강화제도(PLS) 때문에 무조건 농약을 바꿔가면서 사용해야 한다. 꿀벌에 독성이 강한 농약을 개화 시기를 고려하며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정씨가 공개한 농약 구매 영수증과 공병을 보면, 네오닉계 농약이 다수 포함됐다. 정씨가 사용하는 농약 중 하나인 ‘빅카드’는 클로티아니딘(CLO) 액상수화제 살충제로 4단계 경고문구가 명시된 고독성 농약이다. 정씨는 이러한 농약들을 구매할 때, 사용 시 주의사항에 대한 별다른 안내지침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김진효 경상국립대 환경생명화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서 꿀벌에 독성이 강한 농약들을 사용하는 방식은 농가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영역”이라며 “애초에 농약의 꿀벌 위해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체계나 지표가 없으므로 국내에서도 명확하게 사용을 금지하거나 그 위해성을 강력하게 공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공모전 당선작 내용은 본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승연ㆍ강민정ㆍ조벼리ㆍ김은송(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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