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 조지 패튼- 1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군인 조지 S. 패튼(1885~1945, 육군 대장)은 노르망디 상륙전과 벌지 전투 등 주요 국면에서 빼어난 전술과 투지로 활약한 전쟁 영웅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전공과 명성 덕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그는 나치에 버금가는 반유대주의자였고 나치 못지않게 러시아를 적대시한 반공주의자였다.
독일 주둔 3군사령관이었던 그에게 전후 미국 정부가 부여한 임무는 '탈나치화(denazification)'에 기반한 독일 통치와 재건이었고, 탈나치화의 근간은 나치 전범 색출-처벌과 민주주의 재교육이었다. 하지만 그는 ‘탈나치화’에 철저히 무심했고, 오히려 반발했다. 1945년 9월 22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나치를 경멸한다면서도 “독일인의 절반 이상이 나치였고 그들을 모두 공직에서 쫓아낸다면 우리는 지옥 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우리는 해야 할 일과 방법을 아는 이들에게 의지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악마와의 타협’이라며 나치 반공포로 석방 문건에 서명했다.
사실상 전후 서독 통치자였던 그는 나치 잔당 독일 귀족과 승마와 사냥 등을 즐겼고, 유대인 구호소로 개조된 나치수용소 경비병으로 친위대 군인들까지 활용하며 “소련에 대항할 미래의 동맹으로서 (유대인 생존자보다) 훨씬 가치 있는 좋은 군인들을 투옥하는 것은 한마디로 미친 짓(madness)”이라고 일기에 썼다. 그는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수용소 유대인 생존자들을 ‘메뚜기 떼’나 ‘짐승보다 못한 존재’, ‘인간의 품위를 상실한 존재들’로 묘사했고, “독일인은 유럽에 남은 유일한, 품위 있는 사람들(decent people)이다. 그들과 러시아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당연히 독일인을 택한다”고 적기도 했다.
그는 1945년 10월 3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됐고, 그해 12월 교통사고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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