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고수'를 찾아서
어쩌면 이 사례는 강아지가 췌장염 걸렸을 때 대처하는 모범 사례라고 봐도 될 정도예요.
서울 청담동 우리동생동물병원 김민경 수의사는 반려견 ‘갑돌이'(10세 추정)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얼마나 적절한 대처였기에 담당 수의사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까요?
갑돌이가 췌장염 진단을 받은 지난 7월, 보호자 조윤정 씨는 평소 보지 못했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갑자기 갑돌이가 구토를 반복한 겁니다. 그냥 단순한 구토가 아니었습니다. 먹은 것을 전부 게워낸 뒤에도 갑돌이는 헛구역질을 하며 구토를 이어갔습니다. 더 이상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구토를 한 뒤에 좀 안정되고 나서 갑돌이에게 먹을 걸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돌이가 먹을 것을 들이대는데 고개를 돌리더라고요. 갑돌이와 함께 산 6년 동안 전혀 없었던 일이었어요.
그제야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윤정 씨는 바로 동물병원을 찾았습니다. 김 수의사는 “복통 증상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분변 검사를 했을 때 기생충은 없었다”면서 “췌장염 키트를 사용해서 확진을 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진단 직후 갑돌이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췌장염은 병원에서 수액을 맞으며 항구토제, 소염제 등 약물 치료를 며칠간 진행하는 방식으로 치료합니다. 겉으로 보면 간단한 처치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방치하면 반려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김 수의사는 설명합니다. 그는 “췌장은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를 분비한다”며 “염증으로 인해 효소가 췌장 밖으로 새면 내장지방을 분해하며 췌장 근처의 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췌장염을 방치하면 간이 손상하면서 간부전이 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초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전신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행히 갑돌이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됐습니다. 3일간 치료 끝에 갑돌이는 회복했고, 사료를 먹어도 토를 하지 않았습니다. 윤정 씨는 “입양 당시를 제외하고 이렇게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처음”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길고양이 사료 먹으며 심장사상충과 살던 떠돌이 개
갑돌이의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미 성견이 된 뒤인 2016년, 경기 수원시의 한 거리를 떠도는 모습이 목격된 까닭입니다. 당시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던 동네 주민들이 갑돌이를 목격한 뒤 길고양이 사료를 나눠주면서 돌봐주고 있었다고 해요. 다만, 지방자치단체 보호소에서 떠돌아다니는 갑돌이의 포획을 수차례 시도하자 주민들은 걱정했다고 해요.
아무래도 지자체 보호소로 갔을 때, 입양할 사람이 없으면 안락사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주민들이 입양처를 찾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사연이 돌고 돌아 제게 넘어온 거고요.
소식을 들은 뒤에도 윤정 씨가 직접 입양할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윤정 씨는 당시에도 고양이 3마리를 키우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1주일 뒤에도, 또 다음 1주일 뒤에도 갑돌이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윤정 씨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입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주민들은 합심해 갑돌이 포획작전에 나섰습니다. 다행히 지자체 보호소 관계자들보다 유대감이 잘 형성된 덕인지 포획은 순조롭게 이뤄졌고, 곧바로 윤정 씨가 돌보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떠돌이 생활 탓인지, 갑돌이 몸에는 심장사상충이 자라고 있었고, 오랫동안 병원을 왔다갔다 하며 치료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심장사상충 치료제를 복용하며 약 1년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갑돌이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해요. 윤정 씨는 “심장사상충 감염이 오래되면 수술로 제거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나마 갑돌이는 초기라서 다행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체중 감량 스트레스 아닌가’.. 끊임없이 돌아보는 자세
갑돌이가 췌장염 진단을 받은 뒤, 윤정 씨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췌장염의 큰 원인 중 하나가 ‘스트레스’인데, 최근 갑돌이가 '체중감량'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돌이는 먹성도 좋은 데다, 어렸을 때 고양이 사료를 많이 먹어서 비만 상태가 쭉 이어졌습니다. 윤정 씨는 최근까지도 갑돌이의 식사량을 줄였는데, 그 스트레스로 췌장염이 발생한 것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김 수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스트레스도 분명 원인 중 하나겠지만, 더 직접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윤정 씨가 함께 키우는 고양이였습니다. 김 수의사는 “갑돌이는 평소에도 고양이 대변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면서 “고양이 대변을 먹어서 갑돌이 소화기관에 세균 감염이 됐고, 이 감염이 췌장으로 올라와 췌장염으로 이어진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갑돌이 처치 과정에서는 유산균 투입도 이뤄졌습니다. 유산균을 통해 세균 저항성을 높여준 겁니다. 김 수의사는 “갑돌이가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은 아니다”라면서 “체중 감량을 위한 식사량 줄이기는 그대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윤정 씨처럼 이상을 빠르게 느껴 병원에 방문하는 게 모범적인 사례겠지만, 만일 증상이 애매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수의사는 ‘물을 마시게 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췌장염의 주된 증상 중 하나는 식사 거부입니다. 그런데 식사를 거부하는 원인은 이물 섭취를 비롯한 여러 질환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물을 마시게 하자마자 물을 토해내면 식도에 이물이 끼어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물을 토해내지 않는다면 다른 질병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어느 쪽이든 급히 동물병원에서 처치를 받아야 하지만, 이 점을 구분하고 가면 처치가 한결 빨라질 수 있습니다.
갑돌이와 함께 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보호자는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윤정 씨는 “바쁘다는 이유로 산책을 많이 못 시켜줘 미안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 수의사는 오히려 갑돌이를 세심하게 생각하고 관리하는 윤정 씨의 돌봄을 높이 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윤정 씨에게 앞으로 어떤 보호자가 되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계획 없이 갑작스럽게 결정됐던 입양이었어요. 그래서 더 인연이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고, 갑돌이를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만큼 잘 해줬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 번 아프니까 보호자로서의 제 행동을 모두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특별히 뭔가를 해주기보다는 지금을 갑돌이 곁을 더 충실하게 채워주는 보호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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