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분쟁 지역 공습
32명 사망·200명 부상… "사실상 최후통첩"
'무력충돌 억제' 역할 러, 이제는 여력 없어
하루 만에 수습 국면 불구, '일촉즉발' 상태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 위치한 카스피해 연안 국가 아제르바이잔이 19일(현지시간) 남부 캅카스의 ‘오랜 숙적’ 아르메니아와의 영토 분쟁 지역에 대규모 포격을 가했다. 최소 32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숨졌다. 1990년대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까지 치렀던 두 나라는 2020년에도 전면전을 벌이는 등 교전과 휴전을 반복해 온 앙숙 관계다. 이번 무력 충돌은 지난해 9월 양측에서 2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던 교전 이후 최대 규모였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도 우려를 쏟아냈다.
아제르바이잔의 공격은 ‘안전핀’으로 작용했던 러시아의 부재 상황을 틈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양국 분쟁엔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한 러시아가 개입해 ‘불편한 화해’를 이끌어냈지만,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는 탓에 관여할 여력이 거의 없는 상태다. 일단 하루 만에 사태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긴 했으나, 양측의 불신과 복잡한 주변 정세 등을 감안하면 당분간은 일촉즉발 상태가 이어질 전망이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이날 아르메니아와의 영토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국지적 대테러 작전’을 수행했다며 “군사 시설 60곳을 수복했다”고 발표했다. 이 지역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지만, 주민 80%는 아르메니아인이다. 지역 행정당국의 인권 옴부즈만은 이번 포격으로 아르메니아인 32명이 사망했고, 최소 200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구소련 '분할 통치'가 키운 지역 갈등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캅카스계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와, 튀르크계 무슬림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간 뿌리 깊은 갈등을 상징하는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튀르크 국가인 오스만 제국이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학살하면서 증오와 복수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 이후 직접 국경을 맞댄 두 나라는 크고 작은 분쟁을 겪다가 1920년대 소비에트연방에 통째로 흡수됐다.
옛 소련 시절, 갈등은 수면 아래에서 더 악화됐다. 소련은 분할 통치 일환으로 아르메니아인이 주민 약 95%를 차지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지방정부의 통치하에 뒀다. 소련의 영향력이 약해진 1988년,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독립을 선언했고 아제르바이잔과 ‘6년 전쟁’에 돌입했다.
2만~3만 명이 희생된 끝에 전쟁은 1994년,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함한 아제르바이잔 영토 20%를 수복하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2020년 석유·천연가스 덕에 급성장한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원래 우리의 영토였다”며 복수전에 나서 다시 전쟁이 벌어졌다. 6주간 약 6,600명이 사망했고, 아제르바이잔은 다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탈환했다.
당시 중재자로 나선 건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공식 인정하되, 아르메니아인이 그대로 거주하도록 했다. 평화유지군 약 2,000명도 국경 지대에 배치했다. 휴전은 맺어졌으나, 불안정은 지속됐다.
우크라 전쟁으로 약화된 러시아 영향력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하는 사이, 불안은 더욱 고조됐다. 지난해 12월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로 향하는 모든 교역로를 봉쇄했다.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해지면서 ‘집단 학살’ 우려가 제기됐으나, 러시아 평화유지군은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도 않았다. 이날 공격은 사실상 러시아 통제력의 ‘공백 상태’가 야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NYT는 아제르바이잔의 포격에 대해 “(아르메니아에 대한) 최후통첩에 가깝다”며 "러시아는 긴장을 해소하는 데 무력하다"고 짚었다. 로이터통신도 “러시아와 미국의 전쟁 중단 촉구도 소용이 없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지정학적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 측 중재에 따라 양측은 이튿날 휴전에 합의했다. 20일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내 아르메니아계 자치 세력이 자치군 무장해제에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AFP통신도 주민 안전 보장 및 분쟁 지역 통합 문제 등에 대해 당국 간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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