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버스·학습장 계약 취소 속출 후폭풍
체험학습운영연합 측 "우리도 존폐 기로"
계약 취소한 300여 곳에 위약금 청구 공문
경기 의정부시 A초등학교는 최근 1, 2학년의 2학기 현장체험학습을 취소했다. 전세버스로 이동하려 대절 계약을 했는데, 정부가 체험학습처럼 비상시적 활동에도 안전장치가 구비된 어린이통학버스(일명 '노란버스')만 이용할 수 있다고 방침을 정했다. 현장 혼란이 커지자 이런 방침이 철회되고 관련 국토교통부령(자동차규칙)도 개정돼 22일부터 시행됐지만, 학교는 그전에 전세버스 이용에 따른 위법성 시비나 사고 시 책임을 우려해 학부모 의견을 묻고 행사 취소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그 불똥이 교사들에게 튀었다. 학교가 버스 대절 계약 취소로 발생하는 위약금 200만 원을 담임교사 5명이 40만 원씩 나눠 내라고 얘기한 것이다.
노란버스를 둘러싼 혼선을 의식해 현장체험학습을 취소한 초등학교 가운데 A학교처럼 교사들에게 위약금 부담을 지우려 하는 곳이 경기 지역에만 30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학교 현장에서 빚어진 혼선이었던 데다가 서울만 해도 시내 초등학교의 76%가 '노란버스 문제'로 체험학습을 취소한 것으로 나타난 터라, 위약금 지급 책임을 떠안은 교사 수는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22일 경기교사노조에 따르면, 경기권 초등학교 가운데 현장체험학습 취소로 인해 체험학습장이나 전세버스운영업체가 요구하는 위약금을 교사에게 부담시키려는 학교가 최소 35곳이다. 이 가운데 24개교는 위약금 전액을 교사들에게 부담하도록 했고, 11개교는 교사가 학교관리자, 행정직원 등과 분담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일부 업장은 구두 계약만 했음에도 위약금을 내라며 학교와 교사들을 압박해 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고 한다.
교사에게 위약금을 부담시키려 하는 학교들은 학교 예산으로 위약금을 지불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위약금 처리 방안을 문의한 교원노조 등에 "학교회계는 교육과정 운영에 직접 필요한 경비를 집행해야 한다"며 "가급적 위약금이 생기지 않도록 계획된 교육활동을 차질 없이 진행하라"고 회신했다. 홍정윤 경기교사노조 사무처장은 본보 통화에서 "교육청은 학교 예산으로 위약금을 물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은 채 '관련 법령이 개정될 예정이니 우선 체험학습을 가라'고만 하고, 학교들은 위약금을 교사에게 부담하려 한다"며 "외부활동에 대해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건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뒤늦게 규칙을 개정해 전세버스로 체험학습을 갈 수 있게 됐지만, 이미 계약을 취소한 학교들은 행사를 도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담당 교사들은 "현장체험학습을 하려면 학부모 안내, 사전 답사, 기획안 작성, 장소·버스 예약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거친 취소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행사를 준비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고 그럴 여건도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상당수 학교는 도보 체험학습이나 학교 내 활동으로 현장체험학습을 대체한 상황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절차를 거쳐 취소한 현장체험학습을 번거롭게 다시 진행할 학교는 별로 없을 것"이라 말했다.
위약금을 둘러싼 학교 내 분란은 경기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소재 초등학교 604곳 중 80% 이상인 479곳(7일 기준)이 2학기 체험학습을 취소했는데, 취소 사유가 '노란버스'와 관련 있는 곳이 462개교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체험학습장 운영자 단체인 전국체험학습운영자연합은 소속된 45개 체험장과 계약했다가 노란버스 논란을 이유로 취소한 학교 300여 곳에 '취소 확정 시 위약금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는 공문을 최근 발송했다. 연합 측은 "초등학교 예약분의 80% 이상이 이미 취소됐거나 취소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자신들도 노란버스 사태로 존폐 기로에 선 터라 위약금 청구를 통해 학교에 계약 취소 철회를 압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김기탁 체험학습운영자연합 대표는 이날 본보 통화에서 "코로나19로 3년간 수익 악화를 겪었는데 올해 계약분마저 무산된다면 대다수 업장이 생존하기 힘들다"며 "위약금 청구서를 내밀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노란버스 논란은 지난해 10월 법제처가 "13세 미만 아동은 비상시적 체험도 어린이통학버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유권해석하면서 비롯했다. 교육부는 노란버스 수가 체험학습 수요보다 훨씬 적어 현장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을 수차례 냈지만, 경찰청이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고 올해 7월 말부터 교육당국에 공문을 전달하면서 학교 현장에 혼란이 초래됐다는 게 교육부 주장이다. 현장 혼란 해소를 위해 국토교통부령인 자동차규칙은 개정 시행됐지만,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전날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법 개정안에는 비상시적 체험학습용 차량 운행은 어린이통학버스 신고· 운영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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