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정치로 돌아오고 있는 문 전 대통령
자기 합리화에 빠지면 진영의 수장일 뿐
아직은 국민 마음을 못 얻은 이유 찾아야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하며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퇴임 후 잊히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내린 다짐이자 국민에게 내보인 약속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교훈을 잊지 않은 연유였을 것이다. “야 기분 좋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난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유유자적했다. 하지만 매일 사저에 몰려온 사람들은 “나와주세요”를 외쳤고, 보수의 눈에 그는 이미 진보의 구심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퇴임 2년 차에 시작된 옥죄기는 이듬해 비극으로 끝이 났다.
‘노무현의 교훈’에도 문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로 돌아오고 있다. 민주당 구심점이 되고 당내 존재감이 커진 것마저 공교롭다. 어불성설이긴 하나 차기 대선 등판론까지 제기된 상태다. 그래서 주목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지만 그는 거침이 없어 보인다. 서울서 열린 9·19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현 정부 안보와 경제를 전 정부 것과 비교해 공개 비판까지 가했다. 잼버리 사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에도 주저함은 없었지만 수위가 달랐다. ‘보수가 안보가 강하다’는 것이 ‘조작된 신화’라는 말에선 결기가 느껴졌다. 이런 내용에서 동의할 부분도 있지만 ‘연설’까지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란 특별한 지위가 있고, 국민 입장에서 임기 5년 심판을 지난 대선을 통해 내린 상태다. 심판자인 국민을 생각하면 임기 중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도 자중자애하는 모습을 지켰어야 맞다.
현 정부의 전 정부 탓이 그를 현실 정치로 소환하는 측면도 있고, 국가원로로서 이에 문제 제기가 불가피하단 주변 건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은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무엇일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더군다나 전직 대통령의 숙명은 현직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반복해 말하는 것에 있다. 다른 말을 할 수 있어도 그러지 않는 게 전직의 금도이고 미덕이다. 현 정부를 비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진영 간 논란이 국가에 도움이 될 리도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시대의 선두에 서 역사의 무게를 견뎌내며 우리 시대의 전진을 이끌어낸 인물들이다. 문 전 대통령 임기 동안 우리 역사가 성취로 기억할 것들은 많다. 하지만 그의 시대에 대한 평가는 통과의례 같은 부정의 시간을 아직은 견뎌내야 한다. 결국은 당장의 불리함이나 억울함이 있을지라도 그 언행과 처신에서 국민만 바라보고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가야 한다. 게다가 지금은 정치가 정상 가동되지 않는, 대화와 협치가 사라진 위기의 시간이다. 전직 대통령마저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면 이는 진영의 수장일 뿐이다. 현직 대통령보다 더 위대하고 능력 있고 성취의 시대를 거뒀다고 생각한다면 아직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 마음을 못 얻은 이유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실패한 전직 대통령들로 우리 현대사가 채워진 것도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소박하다. 재임 전 살고 활동한 연고지로 돌아가 그간 경험을 토대로 지역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모습이다. 그런 문화에 대한 기대가 큰 데는 아직 성공한 전직 대통령을 가지지 못한 탓이 크다. 우리 사회 심각한 국론 분열의 출발점이 전직 대통령이기도 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행보를 넓힐 개연성이 충분하다. 측근 당선을 통해 존재감을 회복하고 사법적 단죄의 근거를 흔들려 할 것이다. 최근 5년 만의 연설에서 수감생활을 ‘오지여행’에 빗댄 이 전 대통령의 심리가 이에 겹쳐 있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사법적 단죄로 실패한 전직 대통령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든 그 격변기 소망은 나라다운 나라였다. 그런데도 5년 만에 심판받았다면 아직은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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