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인상주의 화파의 거두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1880년 작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유명한 미술 평론가이자 컬렉터인 샤를 에프뤼시(1849~1905)는 당대 최고 아방가르드 작가 마네의 작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마네가 그린 그림은 손에 잡힐 듯한 ‘아스파라거스 다발’.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에프뤼시는 기쁜 마음에 약속한 가격 800프랑에, 200프랑을 얹어 총 1,000프랑을 보냈다.
값을 넘치게 받은 마네는 다시 붓을 들어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를 그린다. 그리고 ‘당신이 가져간 묶음에서 이 한 줄기가 떨어졌네요’라는 메모와 함께 새 그림을 소장가에게 추가로 보낸다. 에프뤼시는 두 작품을 오랜 기간 간직하다가 처분했는데,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는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아스파라거스 다발’은 독일 쾰른의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에 걸리게 됐다.
이처럼 동시대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것을 ‘예술 커미션’이라고 한다. 훗날 세계적인 인물이 될 작가를 초반에 알아본 심미안도 그렇지만, 세계적인 작품과 그에 얽힌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예술 커미션이란 굉장히 섬세한 작업이다. 자식 같은 작품이 어디에 ‘정착’할지, 창작의 가격은 어떻게 책정될지는 작가의 자존심과 엮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커미션이란, 단순히 작품을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맞춤형 예술 작품에 타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역사적인 행위이다.
커미션하는 이를 ‘후원자'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 교회들은 개인의 고해와 대중의 계몽을 위해 성화(聖畵)를 커미션했고, 왕족들은 당대 최고의 작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맡겼다. 오늘날은 전시를 위한 신작 커미션, 기관이 주도하는 예술 커미션 등 다양한 커미션 형태가 존재한다. 이 경우 명분이 작가에게 얼마나 가치 있느냐도 중요하다.
필자는 2013년 한국전쟁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영국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예술로 다룬 ‘어느 노병의 이야기’ 전(展)을 기획했다. 작가들이 참전 용사를 만난 뒤 그의 모습과 나눈 대화 내용을 작품으로 승화하는 방법이었다. 필자는 자녀도 친인척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참전 용사 데이비드 캠슬러를 소개했다. 그의 얼굴은 그렇게 세상에 나와 전시의 상징이 됐다.
그렇다면 첫 커미션을 준비·기획하는 신규 컬렉터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먼저, 해당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공부하고 그것들과 친숙해져야 한다. 희망하는 작품의 방향이, 작가가 그간 해온 작품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판단하자. 그리고 해당 작가가 새로운 커미션을 받는지 여부를 확인해 보자. 커미션을 받는다면, 아티스트와 접촉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원하는 작품에 관해 설명한다. 이때 상의한 내용은 이메일로 써서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휘발성 메시지는 대화 내용을 잃어버리기 쉽고 이해한 내용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 아티스트가 창작 방향을 이해하고 제안을 수락하면, 작품의 크기, 예산, 재료 및 기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용은 주로 작가가 제안한 전 작품의 가격을 따라가고, 계약서에 투명하게 적시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런 일련의 과정은 갤러리 운영자, 큐레이터 등 오랜 기간 작가와 교류했던 전문가를 통하는 것이 서로의 전문 분야를 지켜주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진심으로 작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본인의 인생 첫 소장품을 커미션한다면, 그리고 합의점에 이르러 좋은 거래가 성사된다면, 마네와 에프뤼시처럼 향후 서로에게 멋진 지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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