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하원 강경파가 발목… 원조 중단 압박
0.4조 바이든 방공 지원, 공격 미사일 누락
1년 앞 대선 “줄 만큼 줬다” 여론 피로감도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하루는 길고 팍팍했다. 의회에서 국방부와 백악관, 국립문서보관소로 이어진 일정의 목적은 단 하나, 전쟁 지원을 더 많이 끌어내기 위한 ‘로비’였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240억 달러(약 32조 원)어치 추가 지원을 준비했지만 공화당 강경파를 중심으로 한 의회가 망설인다. 우크라이나가 ‘밑 빠진 독’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미 의회를 찾았을 땐 초당적 환대를 받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설득에 사력을 다했다. 상원의원 50여 명을 만나 “(미국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공화당 강경파 반대에 4400억 원어치만 추가 지원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우크라이나 지원은 자선이 아니라 미국 이익을 위한 투자”라며 “러시아 군사력을 약화하는 것은 우리의 전략적 라이벌인 중국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경파의 생각은 다르다. 미국을 위해 쓸 돈도 모자라다고 여기는 이들은 백악관이 마련한 추가 지원안을 하원에 붙잡아 두고 있다. 공화당 하원의원 23명과 상원의원 6명은 이날 “미국인들이 낸 돈이 어디로 가는지, 전쟁의 승리나 출구 전략이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원안을 승인하는 것은 의회의 직무유기”라는 내용의 서한을 백악관에 보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다시 선물을 안겼다. 3억2,500만 달러(약 4,400억 원) 규모의 방공 무기를 지원하기로 했고, 에이브럼스 전차를 다음 주부터 우크라이나에 인도한다고 밝혔다. 집속탄과 열화우라늄탄처럼 민간인 피해나 환경 오염 가능성이 있는 무기도 추가 지원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 군에 꼭 필요한 지원”이라며 사의를 표시했다. 방공 역량 강화는 우크라이나의 급선무다. 이날 새벽 러시아는 한 달여 만에 대규모 공습을 재개했다. 에너지 기반시설을 겨냥한 미사일 공격은 우크라이나인들을 추위와 어둠으로 몰아넣었던 지난겨울 공습을 환기시켰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간절히 원하는 지대지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는 빠졌다. 사거리가 300㎞에 이르는 이 미사일은 러시아 본토 후방 지원부대를 타격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핵무기를 가진 러시아를 자극해 핵전쟁 빌미가 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모든 영혼이 미국에 감사”
감사 표시에 인색하다는 게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미국 일부의 시각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그는 워싱턴 국립문서보관소 연설에서 “미국에 감사하지 않는 영혼은 우크라이나에 없다”고 했다. 그가 바랐던 의회 연설이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거부로 불발된 뒤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세를 낮춘 것은 절박한 상황 때문이다. 반격의 고비인 겨울이 11월부터 시작되는데, 미국의 지원이 끊길 위기다. 이미 미국인의 피로감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 CNN방송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에 충분히 지원했다”는 응답은 51%,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는 48%였다. 전쟁은 벌써 1년 7개월째다. 우크라이나 원조에 들어간 미국 돈이 768억 달러(약 103조 원)에 달한다는 독일 키엘 세계경제연구소의 통계도 이날 소개됐다.
내년 11월 실시되는 미국 대선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걱정거리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유권자 눈치를 더 살필 게 뻔한 데다, “당장 지원을 끊겠다”고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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