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조한, 한국일보 #기억해챌린지 첫 주자
"가수 꿈꾸던 아버지, 함께 노래하고 싶었는데"
"치매 부친 간병하던 어머니가 먼저 세상 떠나"
"숨기지 말고 터놓고 얘기해야… 조기 검진 중요"
"치매는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병이죠. 의지할 곳 없어 가족들도 힘들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일보 캠페인 #기억해챌린지에 많은 분들이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2008년, 가수 김조한은 비교적 젊은 나이(35세)에 치매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치매의 무서움과 환자 가족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어, 15년간 치매극복의 날(9월 21일) 등 치매 관련 행사의 단골 초대손님이 됐다. 김조한은 한국일보가 '미씽,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준비한 기억해챌린지에도 첫 주자로 나서, 휴대폰 조명으로 무한대(∞) 그림을 그렸다.
이달 18일 한국일보를 찾은 김조한은 "많은 국민이 치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그래야 터놓고 얘기하는 사회가 되고, 어려움에 처한 치매 환자 가족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배회 증상 심해진 아버지... 간병하던 어머니가 먼저 세상 떠나
김조한의 아버지는 2000년 미국에서 치매 진단을 받았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김조한은 곁에 살던 가족보다 아버지의 변화를 더 빨리 눈치챘다. 그는 "손님과 싸울 일이 아닌데 가게에서 다투고, 낚시가 오랜 취미였는데 고기가 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주 화를 냈다.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는 2005년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뒤 증상이 더 심해졌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배회 증상도 나타났다. "골프를 안 친 지 5년이 넘었는데도, '골프 치러 가야 한다'고 무작정 집을 나가는 거예요. 예전에 살던 집 근처에 골프장이 있었거든요." 김조한에게 본보의 '미씽' 기획이 더욱 인상 깊었던 이유다.
갑자기 아이처럼 변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치매에 걸리고 아버지는 큰 아기가 돼버렸죠. 제 기억 속 아버지는 항상 힘세고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분이었는데, 정말 슬펐습니다."
치매 간병에 신경을 쏟느라 가족들의 스트레스도 심해졌다. 아버지를 주로 돌보던 어머니는 지병이 악화돼 2006년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당뇨가 있고, 일주일에 2번씩 투석도 받아야 했는데, 아버지가 집에서 사라지면 별 수 있나요. 만사 제쳐놓고 찾으러 돌아다니다 건강이 더 나빠진 거죠."
가수가 꿈이던 아버지, 살아 계시다면 함께 노래 부르고 싶다
아버지는 치매 말기에 접어들면서 아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수 김조한'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가수 김조한이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고, 그게 우리 아들'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인 저는 못 알아봤지만, 가수인 저는 기억했어요. 가수 김조한이 치매를 이긴 셈이죠." 그러면서 "그땐 '노래하길 참 잘했구나, 그래도 내가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조한의 아버지도 가수가 꿈이었지만,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꿈을 포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요양병원에 들어가서도 노래만은 잊지 않았다. "거기선 그냥 '킴(Kim)'이잖아요. 간호사들이 돌봐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흔한 치매 환자'죠. 그런데 병상에서도 노래를 너무 잘 부르니까 의료진들이 깜짝 놀랐답니다. 그때 이후로 '저 사람 아들이 가수래' 하는 이야기가 병원에 퍼졌나 봐요. 제가 병문안 가니까 '당신이 그 가수 아들인가요?' 하고 간호사들이 묻더라고요."
김조한에게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으면 무엇을 함께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탈리 콜이 아버지 냇 킹 콜의 명곡인 'unforgettable'을 리메이크했죠.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예전 음원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한 거죠.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저도 부친이 좋아했던 오페라 '산타 루치아'를 함께 불러 음원을 만들고 싶어요."
치매 조기 검진 필수... 기억해챌린지 참여해주세요
김조한은 우리 사회가 치매를 숨기지 않고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곳이 되길 소망했다. "치매가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잖아요. 일부러 걸린 게 아니거든요. '난 치매 그런 얘기하기 싫어' 이런 식으로 피하지 말고, 주변에 알리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치매 조기 검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아버지가 치매를 앓던 시기에는 정보도 부족하고 제도도 미흡했지만, 지금은 아니거든요. 늦기 전에 테스트하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김조한은 "기억해챌린지로 치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분명 긍정적 효과가 생길 거라고 확신한다"며 다시 한번 무한대 그림을 그렸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미씽-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취재팀은 치매 실종 노인들의 안전한 귀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치매 인식 개선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손길로 치매 노인들을 돕겠다는 취지로, 김조한은 캠페인 취지에 공감해 본보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기억해챌린지는 당신의 기억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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