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2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예정됐던 ‘개 식용 종식 촉구 결의안’ 통과가 불발했다. 지난달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될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밝히자, 여당은 ‘김건희법’을 당론으로 정했다. 야당도 “문재인 정부 때부터 추진했다”며 동의할 때는 순조롭게 통과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우세하고, 추석 민심을 의식해 연휴 이후로 늦춘 것이다. 그렇다면 추석에 함께 모인 가족들과 ‘개 식용 금지’를 놓고 찬반 토론을 해보면 어떨까. 피곤하기만 한 정치 논쟁보다는 훨씬 유익할 듯하다.
□ ‘왜 개고기를 금지하는가’부터 시작하자. 개고기 대체육으로 떠오르는 흑염소는 먹어도 되나? 혹시 “개는 인간과 친숙하고 영리하고 교감하는 반려동물”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흑염소 새끼가 얼마나 인간을 잘 따르고 영리한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확장해 왜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힌두교도는 소고기를 금지할지 역시 생각해볼 문제다. 식용 금지 근거가 종교나 관습 또는 취향이라면,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 법으로 금지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지위를 갖는 생명체라고 생각한다면 토론은 심각해진다. 곡식 등 생존을 위한 다른 식량이 있는데도 동물을 도축하는 것은 종 차별적 행위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처럼 비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식물은 왜 도덕적 지위를 갖지 못하나’라는 반문에 흔들리게 될 것이다. 게다가 생물학의 발달로 식물과 동물의 경계도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 이러다 차례음식을 눈앞에 두고 모두 굶을 수도 있다. 이쯤에서 “한 동물의 죽음은 다른 동물의 태어남으로 대체되며, 그렇게 삶이 이어진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필요 이상의 도축과 육식을 삼가는 선에서 합의하는 게 좋을 듯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가축을 보다 자연 상태에 가깝게 키우고, 본성을 존중하는 사육 환경을 만드는 데 동참하기로 한다면 썩 괜찮은 명절 가족 모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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