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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아이들 목숨까지 왜... "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한국적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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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아이들 목숨까지 왜... "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한국적 현상"

입력
2023.09.25 09:30
수정
2023.09.2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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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자녀살해 후 극단 선택]
송파 사건 포함해 두달 새 최소 6건
"부모 실패 경험 아이에게 일방 전가"
심리부검 등 통해 원인·배경 짚어야

지난 23일 일가족 5명이 서울과 김포 등 3곳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24일 남편과 시어머니, 시누이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송파구 주거지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지난 23일 일가족 5명이 서울과 김포 등 3곳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24일 남편과 시어머니, 시누이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송파구 주거지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송파 일가족 사망사건'에서 40대 여성 A씨의 딸 B양은 어른들이 숨져있던 서울 송파구 거주지가 아니라 경기 김포시 호텔에서 홀로 사망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 등을 보면, A씨는 22일 B양과 함께 호텔에 입실했다가 이튿날 혼자 호텔을 나선 뒤 친정이 있는 송파구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사체 검안 결과 B양에게선 질식사 정황이 발견됐는데, 어머니인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B양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B양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메시지는 엄마와 함께 타고 온 차량 블랙박스에 남은 목소리가 전부였다. 자택에서 발견된 유서엔 '채권·채무로 갈등이 있다'는 어른들 얘기만 들어 있을 뿐, 초등학생 B양까지 왜 세상을 등져야 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부모가 미성년 자식의 생명까지 빼앗는 '자녀 살해'는 극단적 아동학대 범죄다. '일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단어 속에 가려져 있다가, 지난해 전남 완도에서 발생한 '조유나양 사건' 이후 비로소 '아동학대'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극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잇딴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녀를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는 △2018년 7건 △2019년 9건 △2020년 12건 △2021년 14건 등 매년 증가 추세다. 특히 최근 두 달간에만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송파구 사례 외에도 최소 5건 발생했다. 이달 17일 인천 남동구 주택에서 60대 아버지와 5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됐고, 같은 날 전남 영암군에선 부부와 중증장애를 가진 20대 아들 셋이 사망 상태로 발견됐다. 지난달 2일엔 신변 비관 문자 메시지를 남긴 40대 부부가 자녀와 함께 사망했다.

이밖에 자녀는 죽고 부모는 살아남은 경우도 있다. 자택에서 10대 딸을 살해한 40대 여성, 경남 김해 야산에서 10대 자녀 두 명을 살해한 50대 남성은 범행 직후 극단 선택을 시도했지만 목숨을 건졌다.

자녀 살해라는 극단 선택을 하는 부모의 심리에는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들도 제대로 살기 힘들 것'이라는 결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부모의 단정이 사실과 다를 수 있으며, 이런 심리가 자녀의 생명을 빼앗는 정당한 구실이 결코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가정 내 성인들의 동반 극단 선택은 전염성 강한 우울증의 특성이 작용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자녀 살해는 부모가 겪는 실패의 경험과 감정을 아동에게까지 일방적으로 덧씌우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부모와 자녀를 예속 관계로 보는 문화도 자녀 살해를 심리적으로 정당화하는 요소다. 한국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가족을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해야 하는 공동체'로 여기면서, 자녀 삶의 독립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학계에선 자녀를 독립적 인격체로 보지 않는 동아시아 국가에서 이 같은 범죄가 더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고 짚었다.

극단적 선택 이후 꼼꼼한 심리부검 필요

자녀 살해로 이어지는 일가족 사망 문제에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자살예방법'을 개정해 내년 7월부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 사업장 등에서 자살예방교육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극단적 선택에 대한 인식 개선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학계에선 적극적인 '심리부검' 등을 통해, 자녀 살해에 이르는 사건들의 구체적 경위를 파악하는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심리부검은 정신과 전문가들이 자살한 이들의 가족, 지인 등을 심층 인터뷰하고 고인의 유서·일기·병원기록 등을 분석해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다. 현재는 자녀 살해가 발생했을 때 부모가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돼 사건이 끝나버린다. 특히 국내 심리부검은 유족이나 주변인 신청이 있을 때만 실시돼,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자녀 살해 사건의 경우 시행이 쉽지 않은 한계가 있다.

백종우 교수는 "미국, 독일 등은 '아동 사망 검토' 제도를 통해 아이들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드는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한다"면서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동시에, 가정과 아동에 대한 조기 경고를 포착할 수 있는 정책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다원 기자
김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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