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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대상 엿보는 거울... 대통령 '명절 선물'에 숨겨진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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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시대상 엿보는 거울... 대통령 '명절 선물'에 숨겨진 뒷이야기

입력
2023.09.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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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창신2동의 기초생활수급 독거노인 가구를 방문해 추석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창신2동의 기초생활수급 독거노인 가구를 방문해 추석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역대 대통령들은 설과 추석에 명절 선물을 보냈다. '통합과 화합' 차원에서 전국 각지의 특산품을 여야 정치인을 포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 공무원, 의인 등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의미로 활용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명절 선물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일종의 '통치' 메시지인 만큼 구성 내용과 함의에 따라 공방 소재가 됐다. 명절 선물로 인한 구설이나 논란을 살펴보면 당시의 정치적 상황 등을 엿볼 수 있다.

종교 편향 우려에 '생물' 선물 바꾼 MB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08년 추석 선물로 황태·멸치·대추·재래김을 준비하려다 급히 다기 세트로 바꿨다. 지방 특산물을 선별해 선물하는 것이 역대 정권의 관행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다소 황당할 법도 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다양한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대선에서 압도적인 득표 차로 당선됐지만 '소망교회 장로'임을 공공연히 밝혀 왔던 이 전 대통령에게 타 종교가 제기한 ‘편향성 우려'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특히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큰 결례라는 참모진의 견해에 급히 선물을 바꾼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초 불교계를 각별히 염두에 뒀다. 취임 첫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불상위(不相違)의 정신을 마음에 담아 항상 국민의 뜻을 살피고 국민을 섬길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생물’인 멸치를 선물로 보내려다 곤욕을 치른 것을 보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종교 편향성 우려가 낳은 산물이란 해석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종교별로 맞춤형 선물을 보내는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추석을 맞아 각계 원로, 호국영웅과 유가족 및 사회적 배려계층 등 각계 인사 1만3,000여 명에게 각 지역의 특산물이 담긴 추석 선물과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전달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추석을 맞아 각계 원로, 호국영웅과 유가족 및 사회적 배려계층 등 각계 인사 1만3,000여 명에게 각 지역의 특산물이 담긴 추석 선물과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전달했다. 대통령실 제공


김영란법에 우왕좌왕... 대통령 선물도 다이어트

박 전 대통령 재임 중엔 선물에 대한 인식과 관행이 바뀌는 '시대상'이 반영된 논란이 제기됐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전 마지막 명절이었던 2016년 추석에 앞서 정치권 전체가 혼란을 빚은 것이다. 법률 시행 전임에도 김영란법 시행 예고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주고받는 명절 선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서 대통령의 선물도 김영란법 대상이 되느냐 여부가 큰 관심사였다.

당시 국민권익위원회에선 대통령이 일반 국민에게 주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김영란법 대상자'에 해당하는 교직원ㆍ교수 등에게는 5만 원이 넘는 선물은 문제가 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김영란법 시행 전 대통령의 명절 선물의 단가는 통상 7만 원 내외였다. 김영란법 시행 후에는 각 정권마다 단가 5만 원이라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2022년 1월 사회 각계각층에 보낸 설 선물 세트. 김포 문배주, 전남 광양 매실액, 경북 문경 오미자청, 충남 부여 밤 등 각 지역의 대표 특산물로, 코로나19 현장 종사자 등에게 보내졌으나, 선물세트 상자에 그려진 독도에서 해가 뜨는 모습에 주한 일본대사가 이를 반납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실 제공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2022년 1월 사회 각계각층에 보낸 설 선물 세트. 김포 문배주, 전남 광양 매실액, 경북 문경 오미자청, 충남 부여 밤 등 각 지역의 대표 특산물로, 코로나19 현장 종사자 등에게 보내졌으나, 선물세트 상자에 그려진 독도에서 해가 뜨는 모습에 주한 일본대사가 이를 반납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실 제공


'한일관계 악화' 문재인 정부... 선물 상자에 독도 문양

문재인 정부에선 한일관계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악화일로였다. 2022년 설 명절 선물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당시 한일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보낸 설 선물 상자엔 독도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들어가 있었고,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가 해당 선물을 다시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청와대는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어려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희망을 주기 위해 독도의 일출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반격 그리고 당시 대일외교 기조를 반영한 게 아니냐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적절했다는 여론과 외교사절에 보내는 설 선물로는 부적절했다는 여론이 분분했다.


이념 강조 윤 대통령은?... 보수 유튜버들 SNS 인증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추석을 앞두고 전북 순창 고추장, 제주 서귀포 감귤소금, 경기 양평 된장, 경북 예천 참기름, 강원 영월 간장 그리고 충남 태안 들기름 총 6가지로 구성된 선물을 발송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각계 원로와 호국영웅과 유가족을 빠짐없이 발송 명단에 넣었다. 역대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윤 대통령의 명절 선물이 외부로 알려진 건 대체로 극우 성향의 유튜버들을 통해서다. 대통령으로부터 명절 선물을 받는 대상에 극우 성향 유튜버들이 포함돼 있다는 방증이라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추석 극우 성향의 한 유튜버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받은 선물을 실시간으로 공개했고, 이번 추석 선물도 보수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를 운영하는 김세의 대표가 SNS를 통해 감사 인사를 올리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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