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업 악취에 고심한 한다시
자체 검사부터 저감법 연구도
한·일 악취방지법 꼭 닮았는데
한국은 민원 많고 일본은 줄어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일본 도쿄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아이치현 한다시(半田市). 쇼핑몰, 마트 등이 즐비한 시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자 불과 1㎞ 안에 지역 축산농가가 있었다. 축사 대문에서 300m 남짓 떨어진 지점부터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보다 멀어지면 냄새는 이내 사라졌다. 분명 축사가 밀집돼 있는데도 지역 전체에서 냄새가 나는 게 아니었다.
사실 과거 한다시는 축산 악취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960년대 낙농업이 시작된 이곳은 현재 축산이 시 전체 농업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가구당 소 사육두수로 따지면 일본 내에서 가장 많다. 좁은 지역에서 소를 빽빽하게 기르는 것이다. 게다가 겨울철에는 북쪽에서 바람이 내려오는 탓에 서쪽에 몰려 있는 축사 냄새가 도시 중심부까지 흘러 들어오는 지형적 문제도 있었다. 습기가 많거나, 바람이 적어 악취가 빠져나가지 않을 때 민원은 들끓었다.
하지만 요즘 한다시의 악취 민원은 1년에 10건 정도로 크게 줄었다. 축산농가들이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민원에 시달리는 한국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한다시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초반 악취 관련 민원이 한 해에 2만 건 넘게 발생하다가, 점차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쓰레기 소각에 따른 다이옥신 문제나 코로나19로 인한 변화 등으로 잠시 증가했다가도 다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전국에서 1만3,000건 수준의 민원이 제기된다. 일본은 어떻게 악취 민원을 절반이나 줄였을까.
사전 규제하고 국가가 전문가 양성
일본은 50년 전부터 악취를 공해로 규정하고 관리해왔다. 일본 환경성 등에 따르면 1960년대 악취 관리 논의를 시작, 1971년 '악취방지법'을 시행했다. 초기에는 기계로 특정악취물질의 농도만 분석해 기준치 이상 검출되면 규제하는 식으로 운영하다가 1995년 '후각측정법'을 추가로 도입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음식점 등 서비스업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악취, 여러 냄새가 섞여 나는 복합악취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진 상황이었다.
한국도 일본법을 토대로 2005년 비슷한 법을 도입했지만, 결과는 판이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악취 집중 관리 지역 선정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악취관리지역을 지정하려면 △1년 이상 민원이 지속되면서 △악취배출 사업장이 몰려 있는 곳 중 △실제 측정 결과가 기준치를 넘어야 한다. 반면 일본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광범위하게 규제지역을 지정할 수 있다. 한다시는 아예 행정구역 전체를 규제지역으로 정했다. 한국은 사후 관리, 일본은 사전 규제 성격이 짙은 것이다.
냄새를 포집해 사람이 맡아보고 악취 여부를 판단하는 후각측정법은 한국(공기희석관능법)도 쓴다. 그러나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다. 후각측정법은 사람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불신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일본은 악취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취기판정사'를 국가자격으로 관리한다. 한국은 취기판정사가 없으니 대개 공무원에게 맡긴다.
악취 판정 과정도 다르다. 판정원을 선정해 10배, 30배처럼 희석배수를 단계적으로 증가시키면서 냄새를 맡게 하는 과정은 양국이 유사하다. 하지만 일본은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시점의 희석배수를 고려해 취기지수(냄새가 나는 정도)를 계산하는 반면, 한국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희석배수를 최종값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100배 희석한 공기에서부터 냄새가 안 나면 한국은 '희석배수가 30'이라고 판정하고, 일본은 30~100 사이 값을 취기지수로 제시한다. 같은 냄새를 분석했을 때 한국식 결과 값이 더 작게, 즉 악취가 더 약하다고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검사와 연구 병행한 행정 역할 커
일본에선 행정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냄새향기협회를 중심으로 사업장 유형별로 특징적인 악취 해결법을 담은 안내책자를 만들고, 지자체가 나서서 이를 배포하기도 한다. 마나미 후지쿠라 냄새향기협회 부회장은 "정부의 요청을 받아 악취 전문가, 지자체, 제취업계 종사자 등과 함께 만들었다"면서 "축산농가, 퇴비화시설, 쓰레기 처리장 등 업종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악취 민원 감소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한다시가 악취 저감에 성공한 것도 행정의 역할이 컸다. 20년 전부터 농가 악취를 정기 검사하며 관리해온 한다시는 2018년 인근 다이도대학과 합동 연구를 통해 정교한 악취 저감 방법을 만들었다. 당시 개발한 냄새 측정기를 이용해, 5년 전부터는 1년에 3회씩 점검하고 있다. 1차 점검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포집해 정밀 분석에 나선다. 스크리닝을 하고, 문제가 있는 곳을 집중 관리하는 것이다.
물론 민간도 함께 노력했다. 농가들은 악취 원인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뇨를 빠르게 발효시켜 퇴비화하고, 축사를 자주 청소하는 데 신경 쓴다. 또 지역 낙농협회를 중심으로 소똥 냄새를 줄일 수 있는 사료를 개발, 일부 농가는 이를 배합해 사용하고 있다. 모리시타 나오타카 한다시 부주관은 "행정부처와 농가가 같이 해결해 나간 것이 주효했다"며 "축산업이 번영한 지역인 만큼 검사상 문제가 없으면 지역주민들에게도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하는 노력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인터랙티브] 전국 악취 지도 '우리동네 악취, 괜찮을까?'
※ 한국일보는 2018년 1월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 및 세종시가 접수한 악취의심지역 민원 12만 6,689건과, 이 민원에 대응해 냄새의 정도를 공식적으로 실측한 데이터 3만 3,125건을 집계해 분석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내가 사는 곳의 쾌적함을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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