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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 검사했는데 18번 문제없다는 강남 한복판 악취...주민들 "검사를 저녁에 해야"

입력
2023.10.05 04:30
수정
2023.10.05 09:5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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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음식물폐기장 인근 주민 그룹 인터뷰]
5년간 악취 민원 중복 신고 1위
아파트 인근 생활권 전체가 피해
주민들 "짜고 치는 검사 아니냐"
송파구, 뒤늦게 개선 공사 나서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3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자원순환공원 내부에 있는 음식물류폐기물처리시설의 모습. 음식물류 폐기물 수거 차량이 여러 대 주차돼 있다. 이현주 기자

3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자원순환공원 내부에 있는 음식물류폐기물처리시설의 모습. 음식물류 폐기물 수거 차량이 여러 대 주차돼 있다. 이현주 기자


"지하철 타면 사람 체취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질 때가 있잖아요. 근데 우리 동네에는 늘 그렇게 고약한 냄새가 머물고 있어서 짜증이 솟고 노이로제(신경쇠약)가 생길 지경입니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S아파트 단지에 10년 넘게 거주한 전업주부 김다미(42·가명·여)씨의 주요 근심거리는 '악취'다. 김씨의 거주지에서 약 1㎞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음식물류폐기물처리시설 때문이다. 김씨는 "가축분뇨 냄새가 나기도 하고 비 오는 날에는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듯한 썩은 냄새가 난다"고 토로했다. 집 안뿐 아니라 집 주변 생활권 전체에서 악취가 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게 김씨 설명이다. 그는 "창문을 닫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집 밖으로 나가도 냄새가 난다"면서 "차라리 층간소음 같으면 집 밖에 나가 있기라도 하겠는데, 상가나 지하철역에서도 냄새가 급습할 때가 있어 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직접 송파구청에 악취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구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악취 민원 신고를 한 적도 여러 차례다. 그런데 속 시원한 답을 들은 적이 없다. 김씨는 "담당 공무원이 항상 똑같은 답을 '복사+붙여넣기' 하는데, 그마저도 한 달 뒤에 달리거나 아예 답이 없을 때도 있다"면서 "늘 '노력하겠다'고 하는데, 수년째 달라지는 게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동일 주소지 악취 중복 민원 1위, 왜일까

한국일보가 지난달 11일 서울 강남구 마크로밀 엠브레인에서 서울 송파구 장지동 음식물폐기물처리업체 때문에 악취 피해를 겪고 있는 인근 주민 6명을 대상으로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 제공

한국일보가 지난달 11일 서울 강남구 마크로밀 엠브레인에서 서울 송파구 장지동 음식물폐기물처리업체 때문에 악취 피해를 겪고 있는 인근 주민 6명을 대상으로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 제공

김씨는 한국일보가 지난달 11일 여론조사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도움을 받아 실시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이하 FGI)에서 음식물류폐기물처리시설로 인한 악취 피해를 가감 없이 설명했다. 한국일보가 2018년 1월~2023년 상반기까지 전국 모든 기초자치단체 및 세종특별자치시가 접수한 악취 의심지역 민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시설 주소지에 대한 민원은 총 1,402건이었다. 모두 '음식물류폐기물 악취'에 대한 민원으로, 전국에서 동일한 주소지에 대해 접수된 민원 건수 중 가장 많았다. 2012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이 시설은 송파구를 포함해 강남구·광진구 등 서울 7개구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약 450톤(t)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한다.

한국일보는 음식물류폐기물처리시설 인근 주민들에 대한 FGI를 통해 △악취 피해의 심각성 △민원 제기 경험 △사업주와 관할 지역자치단체에 바라는 해결 방안 등을 물었다. FGI는 정량적인 객관식 설문조사와 달리 동일한 현안을 공유하고 있는 여러 명의 설문 대상자로부터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이끌어내는 정성적 설문조사 방법이다. 송파구 FGI는 S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5명을 포함한 30~50대 남녀 인근 주민 6명을 상대로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하수구 뚫는 듯한 냄새... 눈까지 따가워"

송파자원순환공원과 주요 시설과 거리. 그래픽=송정근 기자

송파자원순환공원과 주요 시설과 거리. 그래픽=송정근 기자

FGI에 참석한 주민들은 악취 피해를 다양하게 묘사했다. 회사원 박정훈(37·가명)씨는 "출퇴근할 때는 몰랐는데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냄새를 느끼게 됐다"며 "20대 초반에 막힌 하수구를 뚫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심할 때는 바로 옆에서 하수구를 뚫는 것 같은 악취가 풍긴다"고 설명했다. 시설에서 2㎞ 떨어진 곳에서 10년간 거주하다가 악취 때문에 2년 전 송파구 방이동으로 아예 이사를 갔다는 송지혜(38·가명·여)씨는 "음식물 쓰레기가 부패하고 있는 냄새라고 하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눈이 따끔하게 아플 정도의 냄새였다"고 말했다.

이들은 악취가 집 주변 생활권 전반에 퍼져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10년째 S아파트에 거주 중인 최상진(53·가명)씨는 "자녀와 함께 저녁에 아파트 앞 장지천 둘레를 산책할 때가 많은데, 냄새가 너무 심할 때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반대편으로 걸어가거나 아예 산책을 포기하고 집에 들어올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2007년부터 S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민근(54·가명)씨는 "사람이 일부러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살기도 하고, 피톤치드를 맡으러 산에도 가는데 집 안에서 악취를 느낀다는 것은 상당히 큰 고충"이라며 "환기를 하려고 창문이라도 열면 외려 집에 악취가 들어와 아예 공기청정기를 계속 틀어놓고 지낸다"고 설명했다.

악취 문제가 지역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부동산 가치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직장인 유정연(46·가명·여)씨는 "주변에 '장지동 산다'고 이야기하면 대번에 '거기 괜찮아요? 냄새 심하다던데'라는 반응이 나온다"면서 "우리 동네가 이사 오기도 싫고, 와도 이사 가고 싶어 하는 기피 지역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음식물류폐기물처리시설이 있는 곳 이름은 '송파구자원순환공원'이지만, 사실상 21세기 축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피해가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음식물폐기물 시설 다른 구로 옮겨라"

FGI 참여 주민 6명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할기관에 문제 제기를 하거나 주민회의체와 소통하는 등 악취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행동을 취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씨는 "지역 맘카페에 누군가가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사이트 링크를 걸어주기도 하고, 아예 송파구청 사이트 링크를 즐겨찾기에 등록해 놨다"면서 "오늘까지 3일 연속 민원을 넣고 있는데 (구청은) 꼼짝도 안 하는 것 같다. 아직도 민원이 모자란 것 같다"고 했다. 정씨는 "한 군데에만 얘기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아파트 입주자회의, 아파트 관리사무실, 주민센터 등을 통해 민원을 제기했지만 개선책을 들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씨는 아예 악취 대응을 위한 주민협의체에 가입했다.

본보가 입수한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의 복합악취 검사 결과에 따르면, 송파구 음식물류폐기물처리시설의 2018~2022년 19차례 진행된 악취 검사 결과는 2021년 8월 한 차례 기준치를 넘긴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적합'으로 판정됐다. 악취가 아니라는 결과다. 그러나 FGI 참여 주민 모두 이 결과에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정씨는 "냄새는 저녁때나 밤 12시 넘긴 시간에 많이 난다. 의도적인 건지 공무원 근무시간 때문에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이 시간대에는 악취 포집을 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검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도 "미리 검사 일정을 예고해주는 게 아니겠느냐"며 "사업주도 그에 맞춰서 최대한 악취 배출을 줄이는 짜고 치는 행태일 걸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최씨도 "계속 적합 판정이라는 데이터를 공개하니 더 화가 난다.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수정송파자원순환공원 민원 건수 추이

수정송파자원순환공원 민원 건수 추이

장기간 지속된 문제임에도 송파구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는 데도 불만이 컸다. 최씨는 "구청 담당 공무원이 순환보직으로 6개월, 1년 지나 바뀌면 주민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외려 주민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악취 개선 방안을 공부하고 있고, 구청 공무원이나 사업주보다 더 전문가가 돼버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씨는 "이제는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계속 살아야 하나? 이사 가야 하나?' 이 세 가지만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송파구에서 6개 구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책임졌으니, 이제는 다른 구로 시설을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파구 "50억 원 들여 악취개선공사 중"

송파구는 악취 문제와 주민들의 민원 제기가 장기화하자, 올 1월부터 50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해당 시설의 악취개선공사를 6개월간 진행했다. 탈취기와 송풍기를 새로 설치하고, 탈취 설비를 최적화했다. 아예 시설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시설을 지하화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는 대책이다.

송파구 관계자는 "해당 시설은 대체로 악취 배출의 법적 기준치보다 더 엄격한 기준치를 충족시켜오고 있다"면서 "10월 말까지 악취개선공사 시운전이 마무리되고 나면 주민 불편도 줄어들고, 민원도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설 이전이나 지하화 방안에 대해선 "2032년까지 사업주와의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 시설 이전이 어렵다. 처리시설 지하화는 새로운 택지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건설하는 방식이라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고 답했다.


[인터랙티브] 전국 악취 지도 '우리동네 악취, 괜찮을까?'

※ 한국일보는 2018년 1월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 및 세종시가 접수한 악취의심지역 민원 12만 6,689건과, 이 민원에 대응해 냄새의 정도를 공식적으로 실측한 데이터 3만 3,125건을 집계해 분석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내가 사는 곳의 쾌적함을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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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현주 기자
윤현종 기자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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