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걷기 운동 삼매경에 빠진 최명남씨
서울·지리산·제주 둘레길 이어 전국 해안도로 정복
"자연의 소중함 깨닫고 건강까지 챙기니 금상첨화"
지난달 17일 오전 경기 광명시 안양천 둑길에서 만난 최명남(77)씨는 ‘광명마라톤에이스’ 동호회원 8명과 함께 몸을 풀었다. 민소매에 짧은 반바지, 가벼운 운동화를 착용한 최씨는 오전 내내 동료들과 함께 달리며 구슬땀을 흘렸다. 그는 “매주 같은 코스를 달린다”면서 “호흡을 조절하며 뛰다 보면 어느새 나이를 잊게 된다”며 웃었다.
영락없는 마라토너의 옷차림새와 마인드지만, 그는 단순히 달리기만 하는 동호인이 아니다. 최씨는 ‘걷기 위해 뛰는’ 마라토너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무려 4,000㎞가 넘는 전국 해안도로를 홀로 완보(緩步)한 장본인이다. 최씨는 “지난해 4월 해파랑길 1코스(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강원 고성 통일전망대) 750㎞ 완보를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남파랑길(오륙도~전남 해남 땅끝마을) 1,470㎞, 올해 4월 서해랑길(땅끝마을~ 인천 강화) 1,840㎞를 모두 걸었다”며 “처음부터 해안도로를 모두 걷겠다고 생각했다면 엄두가 안 났겠지만, 단계적으로 도전하다 보니 어느덧 전국의 모든 해안도로 완보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1999년 건강관리를 위해 마라톤에 입문한 그가 갑자기 걷기 운동에 빠진 계기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최씨는 “2020년 초에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면서 마라톤을 뛸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고심해보니 걷기 만한 게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꼼꼼한 계획을 세워 해안도로 완보에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운동 삼아 서울 둘레길을 걸어 볼까 마음먹은 게 시작이었다”고 밝혔다. 최씨는 2021년 가을 8일간 서울 14개산의 둘레길을 걸었고, 또다시 8일을 할애해 같은 코스를 반대로 돌았다. 그는 “하루에 한 코스(20㎞)를 걷고 집에 와서 잠을 잔 뒤 두 번째 코스를 정복하는 식으로 둘레길을 돌았다”며 “이때 걷기가 얼마나 어려운 운동인지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실 서울 둘레길 여정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하루 20㎞ 걷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라톤 풀코스를 250여 회나 완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보니 걷기와 달리기는 전혀 다른 운동이었다. 최씨는 “평지를 달릴 때 사용하는 근육과 산을 오르내리며 사용하는 근육이 달랐다”며 “초창기에는 한 코스를 걷고 곧바로 두 번째 코스를 정복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걷기 운동의 재미에 빠진 그는 같은 해 10월 지리산 둘레길 정복에 나섰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꼬박 23일간을 걷고 또 걸은 끝에 약 300㎞에 달하는 지리산 둘레길을 모두 돌 수 있었다. 최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해 4월 제주도 둘레길 걷기에도 도전했다. 그는 “배를 타고 추자도와 우도까지 들어가 또 한 번 300㎞를 걸었다”며 “여러 지역의 둘레길을 꾸준히 돌다 보니 걷기 운동에 자신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지리산 여정을 마친 그의 눈에 마침내 전국 해안도로가 들어왔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 ‘두루누비’를 통해 정보를 얻으며 완보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한 번 걸음을 떼면 최대 두 달을 쉼 없이 걸어야 하는 해안도로 완보는 둘레길 여정과는 또 달랐다. 최씨는 “음식, 옷가지 등 이것저것을 챙기니 배낭 무게만 15㎏에 달했고, 여기에 텐트까지 짊어져야 했다”며 “그런데 막상 여정을 시작하니 날씨가 너무 추워 텐트를 칠 수 없었고, 배낭 무게도 장시간 걷기에는 너무 무거웠다”고 돌아봤다.
최씨는 우선 배낭 속 짐부터 줄였다. 육포, 초코파이, 베지밀 등 최소한의 음식과 땀이 나면 갈아입을 여벌의 옷만 챙겼다. 이렇게 하니 배낭 무게가 5㎏ 미만으로 줄었다. 또 텐트 대신 차를 가지고 다니며 ‘차박’을 했다. 몸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2시~3시까지 걸은 뒤 버스를 타고 차를 세워둔 곳으로 이동하는 게 일과였다”며 “아무래도 서울에 비해 대중교통이 잘 구축돼 있지 않다 보니 버스를 타고 뺑 돌아서 출발지로 돌아와야 해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하루 35~40㎞에 달하는 이동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서해랑길 마무리 코스인 인천 인근은 산길이 많아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최씨는 “김포~강화 코스는 정말 힘들었다”며 “하루에 꼬박 13시간을 걸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이토록 험난한 과정을 겪고도 최씨는 내년 5~6개월 여정으로 다시 한 번 해안도로 걷기에 나설 계획이다. “자연과 함께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번은 그물에 걸린 고라니를 발견해 살려준 적이 있는데,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며 “하루 종일 걷다 보면 곤충 울음소리,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따뜻한 햇볕 등 평소 그냥 지나치던 자연이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마라톤을 하다 입은 무릎부상도 걷기 운동을 하며 완치됐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라며 웃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