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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원래 진이 빠지는 거" 환경도 위협하는 그 말

입력
2023.10.07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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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런지, 카일 루이스 '오버타임'

편집자주

사회가 변해야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때로 어설픈 희망을 품기보다 ‘사회 탓’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힘을 비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민낯들' 등을 써낸 사회학자 오찬호가 4주에 한 번 ‘사회 탓이 어때서요?’를 주제로 글을 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은 참으로 기만적이다. 아침에 개똥만 밟아도 찝찝하고, 점심 먹다가 소매에 김치만 흘려도 종일 신경이 쓰이는 게 사람인데 어찌 모두의 하루가 같겠는가. 어떤 성별은 매일 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 개똥을 마주해야 하는데, ‘집안일이 다 그렇지’라는 얄팍한 세상이치만 부유하면 황당하다. 어떤 계층은 단지 자신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국물 자국이 덕지덕지인데, ‘고생 안 한 사람 어디 있냐’라는 납작한 진단만이 전부라면 괴상하다.

말한들 달라지지 않기에 체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푸념을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해석하면 불평등은 개인이 극복해야 할 대상에 불과해진다. 그래서 우리들은 불공정한 걸 알면서도 입 다물고 일한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개인에게만 살 자격을 준다는 걸 경험해서다. 머리는 혼란스러워도, 몸은 ‘욕먹지 않을 방식으로’ 알아서 움직인다. 그 결과, 8시간 일해서 벌 돈을 15시간 일해서 벌고 다행이라고 여긴다. 남들 잘 때도, 남들 쉴 때도 일하면서 그렇게라도 살아감에 감사한다. 그 끝에 남은 건 ‘일은 원래 진이 빠지는 거’라는 위험한 정의 한 줄이다.

버티고 버틴 몇몇 개인들 사례는 마치 이 사회가 정직한 것처럼 포장되겠지만, 자본주의라는 외피로 덮인 지구는 어떠한가. 미치도록 일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지구는 미쳐 간다. 노동시간 단축의 중요성을 다루는 책 '오버타임'은 노동시간을 4분의 1로 줄이면 탄소배출도 30% 줄어든다는 연구를 소개하며 환경문제의 본질을 짚는다.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을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이 여전히 구호만 존재하는 이유는, 그 필요성이 의심받아서가 아니다. 실천하지 못해서다.

오버타임·월 스트런지, 카일 루이스 지음·성원 옮김·시프 발행·160쪽·1만4,000원

오버타임·월 스트런지, 카일 루이스 지음·성원 옮김·시프 발행·160쪽·1만4,000원

휴식이 보장되면 꼼꼼하게 장 볼 여유가 생기고, 요리 후 뒷정리 천천히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삶이라면 쓰레기는 저절로 준다. 힘들면, 만사가 귀찮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늦은 밤에야 퇴근해서 요리를 하기에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배달 음식이나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간편식, 혹은 비닐에 겹겹이 싸인 포장음식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냐”는 저자의 물음에 당신만 예외일 수 없다. 일상이 지치면, 일상 안에 '기후'라는 단어를 무게감 있는 준거점으로 설정할 수가 없다. 능력 없으면 도태되어도 마땅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우리는 일 외적인 것을 최대한 간편하고 편하게 처리해야 하는 효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은 공공연하게 'N잡(본업 외 여러 부업을 갖는다는 뜻의 신조어)'을 권장한다. 하나의 일자리로 안정적으로 살기 힘든 세상인 줄 몰랐냐면서 부업하라고 다그친다. 불안정한 일을 여러 개를 하니 상시적으로 일상이 불안정하다. 사회구조의 문제를 꼬집는 이론이 들어갈 틈은 없다. 환경문제가 아무리 심각한들 전투 중인 개인보다 우선될 수 없다.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다 죽을 거다.

오찬호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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