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후보자, 다시 문화정책 수장 앞둬
문화계 차별 · 배제 의혹은 적격성 걸림돌
통합과 다양성 인정이 문화장관 최고의 자질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5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선다. 저간의 사정을 볼 때 그가 장관으로 임명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15년 만에 다시 문화예술 부처의 수장이 된다면 개인적으로 명예겠지만 과제는 산적해 있다. K컬처 지원, 문화 향유권 확대,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 대처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히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그를 발탁하면서 “문화 예술 현장에 대한 이해와 식견뿐 아니라 과거 장관직 수행으로 정책 역량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그때 그 사람'이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최장수(3년) 문체부 장관을 지낸 공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그와 함께 일해 본 인사들은 업무 파악능력과 추진력도 탁월하다고 전한다.
하지만 행정능력만으로 그가 적격자인지는 의문이다. 유 후보자는 이명박(MB) 정부 시절 전임 정부가 임명했던 문화계 인사들을 무리하게 퇴출시킨 주역이었다는 의혹의 당사자다. 박근혜 정부의 심각한 비위에 묻히기는 했지만, 그가 장관 재직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은 좌파 예술인 청산과 우파 예술인 지원을 골자로 한 여러 문건을 작성했다.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든 의도와 다르지 않다. 유 후보자는 “기관장들의 사퇴를 종용한 바 없다”, “(MB정부 때는) 블랙리스트가 없었다”고 반박한다.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당시 그의 위치나 영향력을 고려하면 차별과 배제를 통해 문화예술계의 대립·갈등을 심화시킨 책임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없다. 문화연구자들이 한국의 문화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한 ‘팔 길이 원칙'(정부가 예술인들을 지원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 원칙)이 희미해진 시기를 MB정부 시기로 꼽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그 시기부터 정치적 코드에 따라 문화예술계를 차별적으로 지원하고 배제하는 정책이 본격화됐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어느 정권도 ‘문화권력’을 바꾸기 위해, 기관장 쫓아내기나 블랙리스트 작성 같은 카드를 꺼내지 못한다. '공정성' 회복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지난 1년간 행보는 미심쩍다. 특정인물을 지원에서 배제하고 차별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문화계를 편 가르기 한다는 의심을 감출 수 없다. 진보색채가 강한 영화계나 출판계가 타깃이 됐다.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는데도 문체부는 지난 6월 느닷없이 영화진흥위원회가 방만한 예산운영을 하고 있다고 망신을 줬고, 내년도 주요 사업 예산(독립영화 지원, 영화제 지원 예산 등)을 대폭 깎았다. 개봉영화의 박스오피스가 부풀려졌다며 경찰이 지난 8월 영화배급사들을 수사하고 요란하게 발표한 것도 여러 말이 나온다. 당시 영화계에는 검찰수사에 대한 비판을 담은 영화 ‘그대가 조국’ 제작사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출판계도 무사하지 않았다. 인문사회 출판사들에 젖줄과 같은 ‘세종도서 사업’ 예산을 없애려 했고 국고보조금 회계관리가 투명하지 않다며 출판계 파트너 격인 대한출판문화협회 대표를 수사 의뢰했다.
그런 점에서 유 후보자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예산을 집행할 때) 좁은 문을 만들어 철저히 선별하겠다”, “나랏돈으로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말이 되나”고 한 점은 걱정된다. 정권과 권력에 대한 비판이 본령인 예술가들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예산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부디 기우이기를 바란다.
문화산업은 다른 생각을 인정해 주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적 분위기 속에서 결실을 보일 수 있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통합과 다양성 인정이 문화부처 장관이 가져야 할 최고의 자질임을 유 후보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