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6일 부결됐다. 사법부로서는 35년 만에 겪는 대참사다. 거대 야당은 의석수를 앞세워 발목을 잡았고, 반대로 대통령실과 여당은 대화와 협상의 문을 봉쇄한 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양측이 오직 국민만 바라보겠다고 외칠 뿐 정작 상대방은 인정하지 않은 결과다. 타협이 본령인 정치가 실종되고 서로 본때를 보이겠다는 극한의 대립만 남아 초유의 사법부 공백 상태를 초래했다.
이날 임명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18표에 그쳤다. 반대는 175표, 기권 2표였다. 국회에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이후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열고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 의석수(168석)를 감안하면 부결에 동의하는 무소속과 정의당까지 포함해 사실상 이탈표는 없었던 셈이다.
표결 직후 정치권은 또다시 '네 탓 공방'만 반복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반듯하고 실력 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공백 상태를 초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야당에 책임을 돌렸다. 국민의힘은 아예 국회 로텐터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김기현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개인적 사법 리스크 방탄을 위한 의회 테러 수준의 폭거"라고 비난했다.
반면 민주당은 "발목을 잡은 것은 윤석열 정부"라고 맞섰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자초한 결과"라며 "‘발목 잡기’ 운운하지 말고 사법부 수장의 품격에 걸맞은 인물을 물색하기 바란다"고 질타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사법부 장기공백을 초래한 장본인은 윤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갈수록 고조되는 여야의 갈등과 대치정국을 감안하면 이번 부결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벌써 17차례나 장관급 인사 임명을 강행했다. 이르면 7일 18번째로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한다. 여당은 이런 대통령실의 일방통행을 지켜만 보며 국회 내에서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애초부터 흠결 없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사람을 후보자로 추천했으면 갈등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간 각종 탄핵과 해임안 발의로 헌정사를 새로 쓰며 압박수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올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을 가결했고, 지난달에는 한덕수 총리 해임안까지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장관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민주당이 체면을 구겼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대를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만 규정한 채 공당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협치는커녕 최소한의 타협조차 어려운 정치권의 상황이 나아질 기미도 딱히 없어 보인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치달으면서 여당은 타협을 위한 추가적 노력을 하지 않고, 야당은 의례적 반대를 반복하고 있다"며 "한마디로 얘기하면 정치가 실패한 것"이라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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