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피케팅, 서울 공연장 대관 대란 천태만상]
아이유 "불공정 예매 고발 포상"... SNS 실시간 검색어까지 뜬 '암행어사 전형'
엔데믹 후 공연 수요 증가, 매크로 등 불공정 예매 불만 폭발
노년층 속수무책... 트로트 시장에선 청년 예매 자원봉사까지
주경기장 휴관 등으로 서울선 공연장 대관 대란... 나훈아도 '탈(脫)서울'
'암행어사 전형'. 지난달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구 트위터)엔 이런 키워드가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로 떴다. 과거 시험 열리는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난데없이 암행어사를 소환한 곳은 아이유 콘서트 티켓 예매 현장. 아이유는 암표 거래를 제보하면 부정 예매한 티켓을 취소한 뒤 신고자에게 불법 거래 신고 포상으로 그 표를 주는데, 이런 방식으로 티켓을 얻는 것을 팬들은 암행어사 전형이라고 부른다. 공연 하루 전날 아이유 팬들이 대입 합격자 발표 기다리듯 줄줄이 이 전형 합격자들을 찾아보고 그 소식을 퍼 나르다 보니 X에 암행어사 전형이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날 X엔 암행어사 전형 합격자들이 아이유한테 받은 '마패' 즉 불법 거래 신고 포상으로 얻은 티켓 인증 사진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암행어사 전형 확대하라" K팝 팬들의 성토
이후 온라인엔 "암행어사 전형을 만들어 달라"는 다른 K팝 팬덤의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사정은 이랬다. ①정부가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을 5월 선언한 뒤 공연 관람 수요 폭증으로 인기 가수의 공연 예매가 더욱 어려워졌고 그 과정에서 ②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표를 독식하는 암표상들로 아무리 클릭해도 표를 살 수 없는 불공정 예매 환경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공정한 티켓 예매에 대한 열망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암행어사 전형에 대한 열광으로 표출"(김상화 음악평론가)되고 있는 셈이다.
불공정 환경에서 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케팅(피케팅)에 노년 관객들은 속수무책이다. 임영웅 소속사 물고기뮤직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임영웅 서울 공연 예매가 시작된 후 1분 만에 티켓 예매 사이트엔 370만 명이 몰렸다. 이 '고난의 행군'에 뛰어든 노년을 돕기 위해 트로트 공연 시장엔 청년 자원봉사자까지 등장했다.
"할머니 생각나서" 예매 봉사 '효도 대첩'
임영웅 서울 공연 예매가 시작된 날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소재 한 카페. 앉아 있던 노년 여성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갑자기 손뼉을 치더니 앞치마를 두른 젊은 여성과 함께 손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환호했다. 옆에 있던 어린이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바로 그 자리를 떴다. 임영웅 공연 티켓 예매에 성공한 뒤 벌어진 풍경이다. 이 모습이 담긴 영상은 8일 기준 조회수 180만 건을 훌쩍 넘어섰고, 임영웅은 이 영상이 올려진 SNS 계정에 들러 '저도 눈물이 나네요'란 댓글까지 달았다. 이 영상을 올린 이는 카페 직원 오은(30)씨로 그가 영상 속 노년 손님의 임영웅 공연 예매를 도왔다.
오씨는 그 손님을 이날 처음 봤다. 6일 카페에서 만난 오씨는 "손님이 '네이버 초시계를 휴대폰에서 작은 화면으로 보는 방법이 있냐'고 물어보셔서 '아, 임영웅 공연 예매하시려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예매 방법을 잘 모르시겠다고 오후 7시부터 초긴장 상태였고 처음엔 예매 사이트에서 세 번 튕긴 뒤 대기자 15만여 명 순번이 나와 50분여를 기다린 뒤 공연 날짜랑 좌석 선택을 해드렸다"고 말했다. "할머니 생각도 나고 남 일 같지 않아" 도와드렸다는 게 그의 말이다. 노년 손님은 카페 인근 학원에 다니는 손자를 데리러 나온 길이었다. 오씨는 "그날 할머니 자식분들도 모두 예매에 실패하셨다더라"며 "전화번호를 알아간 뒤 '밥 사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해서 차마 나가지 못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영상이 화제가 된 뒤 카페엔 "저 '영웅시대'(영웅시대 팬덤)예요"라고 고백하는 손님들이 잇따라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씨는 19일 오후 5시 퇴근 후에도 카페에 남을 예정이다. "임영웅 지방 공연 티켓 예매가 있는 날이라 소식 듣고 예매 날 찾아오는 어르신이 있을 것 같아서"다.
나훈아가 올해 서울에서 노래하지 않는 사연
남녀노소 관객들이 피케팅으로 '전쟁'을 치를 때 가수들은 공연장 섭외 대란으로 진땀을 빼고 있다. 9월부터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의 보수 및 이전 공사가 시작되고 12월 고척돔까지 내부 수리에 들어가면서 서울에 1만여 관객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KSPO돔)을 제외하고 공연 성수기인 연말에 싹 다 문을 닫는 탓이다.
나훈아가 '12월에'란 주제로 여는 공연은 서울에서 볼 수 없다. 공연은 대구(12월 9, 10일)와 부산(16, 17일), 일산(30, 31일)에서만 열린다. 주경기장 등의 장기 휴관으로 '체급'이 작은 공연 시설로 공연이 몰리고 서울에서 마땅한 대형 공연장을 찾지 못해 '탈(脫)서울'이 이뤄진 여파다. 2021년과 2022년 연달아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한 나훈아가 올해 서울을 떠나 노래하는 배경이다. 2007년부터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매해 10월 열린 그랜드민트페스티벌 주최 측도 올해 체조경기장 대관에 실패해 일부 행사 진행에 진통을 겪었다. 이렇게 대관 경쟁이 심해지자 공연 업계에선 일부 기획사에서 미리 잡아둔 공연장을 웃돈을 받고 타 기획사에 넘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K팝 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중국 등에서 한국으로 공연을 보기 위해 넘어오는 해외 관객이 점점 느는 추세"라며 "(공연장 대관 대란은) K팝은 성장했는데 정작 공연 인프라는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벌어지는 촌극"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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