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취임한 권영준 대법관이 지금까지 59건의 대형 로펌 사건을 회피해, 다른 대법관에게 사건들이 재배당(주심 변경)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사건을 제대로 심리하지 못하는 ‘반쪽 대법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7월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권 대법관 후보자의 대형 로펌 유착 의혹이 크게 논란이 됐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김앤장 등 7곳 대형 로펌에 법률의견서를 써주고 무려 18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그는 “최근 2년간 관계 맺은 모든 로펌 사건을 회피하겠다”고 약속했고, 임명동의안이 통과돼 대법관에 임명됐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되기 전 2년간 고문을 맡거나 자문을 제공했던 법인을 이해관계 당사자로 간주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권 대법관은 취임 후 김앤장·태평양·세종·피터앤킴·율촌·바른 등 대형 로펌이 대리인으로 선임된 사건 59건을 회피했다. 회피는 법관이 사건 당사자들과의 관계 등을 이유로 공정 재판에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아 사건 심리를 피하는 제도이다.
권 대법관으로선 약속을 지킨 것이지만, 대법원에는 큰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한 해 보통 재판부에서 회피 사건은 10건도 되지 않는데, 두 달간 약 60건은 큰 부담이 되는 수치다. 물론 회피 사건 수만큼 권 대법관에게 다른 사건이 배당됐을 수 있지만, 민사 전문가이면서도 대부분 민사사건을 회피한 것으로 드러나 전문 분야의 장점조차 살리지 못하는 대법관이 되고 있다.
이런 예측 가능한 리스크도 걸러내지 못한 정치권과 임명권자의 책임이 크다. 권 대법관의 18억 원 수수 내역이 드러났을 때, 대법관으로 부적격하다는 지적이 충분히 제기됐었다. 더구나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서 대법원장 공백사태까지 발생해, 대법원의 업무 적체는 심화하고 있다.
위법이 드러나 탄핵되지 않은 한, 이미 임명된 대법관을 물러나게 할 수는 없다. 인사 검증과 인사청문회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떤 리스크로 돌아오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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