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인이 전한 참상]
가자지구는 연락두절... SNS로 지인 생사 확인
이스라엘인도 "가족 피란, 친구는 군사작전 중"
상대 적개심 크지만... '평화' 바라는 마음 같아
"가자지구 삼촌 집이 폭격당해 형수가 숨을 거뒀습니다. 어머니와 통화하기 30분 전에는 바로 인근에서 폭탄이 터졌어요. 병원도 마비됐고, 전기와 수도도 모두 끊겼는데 피란 갈 곳이 없어 모두 벌벌 떨고 있다 합니다."
어머니, 형, 누나, 동생 등 7명의 가족이 모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살레흐 란티시(26)는 고국에서 연일 들려오는 참상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난민 자격으로 한국에 온 란티시는 요즘 가족들 걱정에 페이스북 메신저만 쳐다보고 있다. 11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 참가한 그는 "어제는 친구가 사는 옆 건물(가자지구)이 폭격을 받아 파편이 집으로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며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점령과 폭격, 강제추방의 결과일 뿐 전쟁의 원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틀 전 예루살렘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 중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렸어요. 벙커로 대피해야 한다면서 전화가 갑자기 끊어졌는데, 어머니와 다시 연락이 되기까지 몇 시간의 기다림은 저에게 '지옥'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떠나 한국으로 여행 온 리모르 슈크른(30)도 요즘 가족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과거 교환학생 시절 경험했던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 서울을 찾은 와중에 전쟁이 터지고야 말았다. 지금은 가족을 보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 슈크른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무고한 팔레스타인인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하마스는 납치된 150명 이상의 어린이와 여성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된 양측의 무력 충돌이 이역만리 한국에 머무는 양국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있다. 본보가 국내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민 20명을 인터뷰한 결과, 양국 국민들은 빠른 시일 내에 분쟁이 종식돼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예고한 가자지구에 가족과 친구가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천에 사는 가자지구 출신 무함마드(25)는 "가족들이 모두 가자에 살고 있는데, 연락이 두절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세마(24)도 "가자에 사는 지인들의 인스타그램을 매일 확인하며 그들이 여전히 살아있기만을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피해를 우려하는 건 이스라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이달 3일 서울에온 로니(22)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비교적 안전한 이스라엘 중남부로 피란을 가고 있다"며 "군 복무 중인 친구들이 가자지구에서 전투 중인데, 귀국해 군에 복귀하고 싶지만 비행편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서로의 고국을 걱정하면서도, 양국 국민들은 비난의 화살을 상대편에 돌렸다. 팔레스타인인 하디(22)는 "이스라엘 정부야말로 치명적인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건국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이스라엘 국적의 나마 바락(28)은 "하마스 같은 무장단체가 학교와 병원을 포격하는 등 악랄한 행동이 계속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그들은 그저 이스라엘 민족을 싫어할 뿐"이라고 일갈했다.
다만 잔혹한 폭력과 군사적인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의 피해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 초청 장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온 팔레스타인인룰라(24)는 "엄청난 충격으로 무기력하고 멍한 기분"이라며 "중요한 것은, 누구도 전쟁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슈크른도 "이스라엘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롭게 살기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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