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 연작 50여 년, 집요한 작품세계
10여 년 전부터 해외서도 알려져 인기
홍익대 후학 양성, 미술행정가 활동도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이 14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31년 경북 예천 출생인 고인은 무수히 많은 선을 긋는 '묘법'(Ecriture·描法) 연작으로 '단색화 대표 화가'로 불리며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는 1967년 어린 둘째 아들의 낙서에서 착안한 묘법에 50여 년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의 작업은 △연필로 끊임없이 선을 긋는 전기 묘법시대(1967∼1989)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린 뒤 도구를 이용해 긋는 후기 묘법시대 △자연 유채색 작업으로 변화한 2000년대로 구분된다.
그의 작품이 나오자마자 널리 사랑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수차례 참여하다가 기성세대를 향한 저항감으로 반(反)국전을 선언, 동료 화가들과 독립전을 열었다. 1957년 한국 엥포르멜(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는 미술사조) 운동을 주도한 현대미술가협회 활동도 했다. 2010년 회고전 간담회에서 그는 "묘법은 도(道) 닦듯이 하는 작업"이라며 "내가 나를 비우기 위해 수없이 수련하는 과정이 바로 묘법"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이 해외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동료 이우환(87) 등이 참여한 '한국의 단색화'전이 열리면서다. 2015년에는 56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색화' 전이 열리며 호평받았다. 2016년 영국 화이트큐브의 전속작가가 됐고, 2014년 프랑스 파리 페로탕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일본 동경화랑 등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975년 작업한 그의 '묘법' 작품이 지난 10월 5일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60만 달러(약 35억 원)에 낙찰자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다. 그는 위작이 나올 수 없게 작품마다 뒷면에 캡션(설명)을 달아놓았다.
고인은 후학 양성과 미술행정에도 업적을 쌓았다. 조선시대 백자대호(白磁大壺)를 '달 항아리'로 명명하고 작품 소재로 썼던 화가 김환기(1913~1976)의 제자였던 고인은 모교인 홍익대 미대에서 1962년부터 1997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홍대 미대 학장(1986∼1990),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을 지냈다. 국민훈장 석류장(1984)과 옥관문화훈장(1994), 은관문화훈장(2011), 금관문화훈장(2021) 등을 받았고 제64회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고인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그는 지난 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폐암 3기 진단 사실을 밝히며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했다. 이후 고인은 지난 12일 몸이 쇠약해져 서울 은평성모병원에 입원한 뒤 병상에서도 "작업할 게 많다. 배접(종이를 여러 겹 포개 붙임)하라"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만 달러를 지원해 제정한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이 지난 5월 지역 예술인들의 반발로 첫 번째 수상자만 내고 폐지돼 안타까움을 남기기도 했다.
미술계의 추모 열기는 뜨겁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은 미술계 인사들로 붐볐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화를 보냈으며, 15일 오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조문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단색화의 선두주자로 큰 업적을 쌓은 한국 현대미술의 큰 별이 떨어져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고인은 한국 근대미술이 현대미술로 전환하는 중요 변곡점의 위에 있던 작가"라고 추모했다. 추모식은 16일 타바타 유키히토 동경화랑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유족은 부인 윤명숙씨와 2남 1녀가 있다. 발인은 17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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