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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 국내 정치에 이용될 때

입력
2023.10.16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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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오
정영오논설위원

네타냐후, 하마스와 위태로운 적대적 공생
강경책과 현상유지 고집 속에 결국 파국
국방은 결코 정권유지 수단이 되면 안 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진입이 임박한 가운데 지난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라파 도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어지며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라파=A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진입이 임박한 가운데 지난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라파 도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어지며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라파=AP 연합뉴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온건파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보다 강경파 하마스를 더 신뢰하는 것처럼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노선을 내세우며 2차 집권을 이어가던 지난 2019년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린 ‘이스라엘과 가자지구는 왜 계속 싸우는가’라는 제목의 기사 마지막 문장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지속되는 것은 네타냐후와 하마스 지도자 모두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 체제’가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 네타냐후는 이를 거부하기 위해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가 필요하다. “팔레스타인이 둘로 분열됐는데 어떻게 2국 체제가 가능한가”라고 반박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하마스의 폭력성이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추구하는 반대 진영을 위축시킨다. 하마스 입장에서도 이스라엘의 강경 대응은 자신들의 무장 저항이 정당함을 가자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은 오래 유지되던 네타냐후와 하마스의 ‘적대적 공생’이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주이스라엘 대사를 두 번 지낸 미 중동 전문가 마틴 인디크는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인터뷰에서 이번 공격에 이스라엘이 속수무책이었던 이유가 “오만함 때문”이라고 답했다. 네타냐후가 지난해 말 극우파와 손잡고 3번째 집권에 성공한 후 대팔레스타인 정책이 더 강경해졌다. ‘2국 체제’라는 항구적 해결책을 외면하고 현상 유지에만 매달렸다. 이스라엘은 가자를 봉쇄한 장벽과 첨단 방공체계 아이언 돔을 과신해 하마스가 대규모 공격을 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며 팔레스타인을 계속 자극했다. 이를 반대하는 대법원을 무력화하는 법을 밀어붙여 국내에서도 대규모 저항에 직면했다.

하마스 입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사우디가 후원하는 PA 입지가 강화되는 것이 불안해졌다. 결국 하마스는 치밀하게 대규모 무력 도발을 준비하고 감행했다.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하마스에 대한 중동 내 지지가 늘어날 것이란 점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물론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한 하마스의 만행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반격 카드가 별로 없다. 일단 과거에 하던 대로 가자지구를 공습해 쑥대밭을 만들었다. 지상전도 임박했다. 네타냐후는 “하마스는 모두 죽은 사람”이라고 큰소리쳤지만, 하마스를 모두 죽일 순 없다. 게다가 하마스가 무너지면 이라크 시리아를 뒤흔들었던 IS(이슬람국가) 같은 더 급진적 세력이 가자의 지배자가 될 가능성도 크다. 지상전으로 민간 희생자가 늘어나면 온건파 PA가 통치하는 서안지구와 레바논 국경지대의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국제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순간에도 네타냐후는 총리 자리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제1야당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가 전시 정부 참여 조건으로 극우파 배제를 내건 요청을 거부하며, 제2야당이 참여하는 비상 내각으로 축소했다. 아랍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는 극우파가 경찰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경찰이 진입하면 민간인 희생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대응과 적대적 공생의 줄타기를 통해 3번이나 집권하며 이스라엘 사상 최장 총리가 됐다. 하지만 국방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그의 책략은 결국 자신의 업적뿐 아니라, 조국마저 위기로 내몰고 있다. 호전적 정권을 이웃으로 둔 우리나라 상황에서 보면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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