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숙련노동자를 육성하고 공급하는 특수한 방식이 존재한다. 이것을 숙련형성체제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1970년까지는 고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 주도적인 신규 인력공급이라는 발전국가 숙련형성체제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기업에서 필요한 기능인력은 기업 스스로 양성한다는 자율성을 인정함에 따라 우리나라 숙련형성의 주된 장소는 기업, 그중에서도 특히 대기업이 되었다. 대기업은 신입사원을 채용하여 직무순환과 승진 경로를 통하여 숙련형성을 시켰다. 기업이 주된 숙련형성의 장소이기 때문에 직업별 노동시장은 미발달하고 자격제도의 노동시장 신호기능도 뒤떨어진다. 이러한 숙련형성방식을 분절적 숙련형성체제라고 부른다.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분절적 숙련형성체제에 속하지만, 숙련형성을 촉진시키는 임금체계의 부재, 노조 및 노동자의 소극적 태도, 갈등적 노사관계, 직무순환의 비체계성 등으로 인해 불완전한 분절적 숙련형성체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불완전성은 1987년 이후 노조운동의 폭발적 성장에 따른 고임금 상황하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1997년의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고 신규채용을 억제했으며, 비정규직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제조업 대기업과 IT 기업을 포함한 민간 대기업의 다수는 더 이상 현장직을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 규모를 현격하게 줄여버렸다.
이때부터 직업계고의 취업률이 급격히 하락하고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는 2010년 '취업 걱정 없는 고등학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마이스터고 제도를 만들고 운영예산을 대폭 증액하였다. 고졸 의무채용 할당 비율도 만들었다. 직업능력을 이론적인 학습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배울 수 있게 된 일학습병행제도 2013년도에 도입되었다.
이러한 직업계고 정책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특성화고 졸업자들의 미래는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최근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2022년 특성화고를 졸업한 학생 6만7,480명 중 취업자는 1만8,320명으로서 27.1%를 기록했다. 전공을 찾아서 취업한 학생의 비율은 더 떨어진다. 취업자의 36%가 첫 직장을 1년 내 퇴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 대신 진학을 선택하는 학생도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들은 숙련이 요구되는 생산직 직종에서 직업계고 출신 대신 전문대 출신을 채용하고 있다.
특성화고 학생 중 최상위층만 공기업이나 민간대기업에 취업할 뿐, 다수는 이제 실업자가 되거나 중소기업 저임금 노동력의 공급원이 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직업교육훈련은 한 사회의 불평등구조 및 계층화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이다. 지식경제로 인하여 인적 자본이 경제의 성과와 경쟁력을 좌우함에 따라 교육과 숙련형성에 대한 투자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한국의 직업교육훈련 제도는 기존 숙련형성체제의 위축과 쇠퇴, 지식경제 및 고등교육 중시 등의 변화를 맞이하여 재설계의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기에 맞게 직업계고 학생들의 이해관계를 올바르게 반영하고 노동시장과 직업교육훈련 연계 강화, 산업인력의 양성 및 청년실업의 해소라는 정책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정부와 각 정당들, 그리고 이해당사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관여도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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