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 지원 사업' 내년 예산 '0원' 중증장애인 취업 돕는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187명 전원 해고 예정 동료지원가 그리고 사업 참여자 16인의 목소리
2021년 4월부터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문석영(32)씨. 그는 태어난 지 4개월만인 92년 11월부터 줄곧 재활시설에서 생활하다 지난 2017년 5월에 자립했다. 문씨는 “동료지원가로 일하면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사업 실적이 낮다면 높일 수 있게 함께 연구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중증 장애를 가진 동료로서 다른 중증장애인들의 삶을 지지할 수 있는 지금의 제 일자리가 저는 좋습니다.”
군포시자립생활센터에서 2년째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는 이기순(60)씨는 말문을 떼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투명필름에 써주세요”라는 요청에 이씨는 ‘나는 동료지원가이다’라는 한 문장을 느리게 써 내렸다. 결핵성 척추염을 앓으며 19세 때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휠체어에 앉은 채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카메라 렌즈 앞에 섰다.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이씨는 동료들을 상담하고 취업을 도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했다’, ‘기뻤다’, ‘보람됐다’, ‘좋았다’, ‘흐뭇했다’, ‘감사했다’ 등의 서술어를 반복했다. 두 달 뒤면 그는 실직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따르면, 통상 ‘동료지원가 사업’이라 불리는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 지원 사업’에 대한 내년도 정부 예산이 전액 삭감(23억 원→0원)되면서 2019년부터 전개해 온 이 사업이 폐지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전국의 동료지원가 187명은 올해 말 전원 해고된다.
군포시자립생활센터에서 2년째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는 이기순(60)씨는 말문을 떼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투명필름에 써주세요”라는 요청에 이 씨는 ‘나는 동료지원가이다’라는 한 문장을 느리게 써 내렸다. 결핵성 척추염을 앓으며 19세 때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휠체어에 앉은 채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카메라 렌즈 앞에 섰다. 1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이씨는 동료들을 상담하고 취업을 도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했다’, ‘기뻤다’, ‘보람됐다’, ‘좋았다’, ‘흐뭇했다’, ‘감사했다’ 등의 서술어를 반복했다.
2019년부터 의정부세움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최다정(26)씨. 그는 “나는 나와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세상에 나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면서 “‘할 수 있다’는 말을 해줬을 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2년째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발달장애인 박경인(27)씨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아빠 얼굴도 모른 채 시설에 보내진 뒤로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는데, 동료지원가 활동을 계기로 친구들과 함께 일하면서 버겁고 힘들던 것들이 사그라들었다”면서 “자기 결정권을 갖게 해준 이 일자리가 사라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고, 지금 이 일상을 지속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절망스러워서 견디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동료지원가 사업은 중증장애인이 상담, 자조(self-help)모임 구성 등 동료지원을 통해 실직 또는 비경제활동 상태에 있는 다른 중증장애인을 만나 취업 활동에 참여하도록 연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과 10월에 발행한 보도설명 자료에서 ‘제도개선을 비롯하여 사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예산집행이 저조했다’면서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지원사업」 내 ‘동료상담’과 유사 중복되고 사업실적이 부진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의 종료를 결정하게 되었다‘라며 예산 삭감의 당위를 설명했다.
올해 5월부터 피플퍼스터 성북센터에서 참여자로 동료지원가들을 만나고 있는 이승준(21)씨. 발달장애인이자 농인인 그는 “지난 달 자립에 성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동료지원가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애인들이 많은 현실에서 동료지원가처럼 장애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사회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19년부터 피플퍼스트 광진센터 동료지원가 근무 중인 이다영(31)씨. 그는 “동료상담을 진행하면서 나로 인해 누군가의 일상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라며 “해고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워서 밤잠을 설친다”라고 말했다.
2022년 8월부터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남태준(24)씨. 그는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인을 돕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돕는 것이라 생각해 동료지원가 일을 시작했다”면서 “소중한 일자리를 없애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업 수행기관 실무자들은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일방성을 지적했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김하은 활동가는 “동료지원가 사업은 사회 참여에서 배제돼 왔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고 지지하면서 노동으로 하여금 사회에 편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설계하고 진행했던 결과물”이라며 “우리는 동료지원가 제도를 중증장애인의 사회활동 자체를 노동으로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최중증 장애인들에겐 애당초 아무것도 없던 척박한 노동 환경이었다”며 “그들이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기틀이 겨우 만들어지고 있는데, 정부가 이제 와서 생산성과 효율, 정량적 성과의 잣대를 들이대며 작디작은 기회마저 아예 없애려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1월부터 피플퍼스트 광진센터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정하훈(28)씨. 그는 “장애인 당사자이기에 다른 중증장애인과의 상담에서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다”면서 “소통에는 많은 에너지가 따르지만 뿌듯함이 그만큼 크기에 계속 동료상담가 일을 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2년째 인천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에서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김성현(21)씨. 그는 “취업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바뀌지 않는 현실에 부딪혔다”라며 “저에겐 이 동료지원가 일이 그런 현실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동료지원가 일이 너무 좋아서 가까운 친구에게도 추천했고 이제 막 함께하게 됐는데, 그 친구에게 면목이 없다”면서 “(동료지원가 사업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이 일자리가 사람들에게 주는 보람보다 수치화 된 실적이 더 중요했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여 말했다.
4년째 중랑구자립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김춘희(60)씨. 그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다른 장애인을 지지하고 조력할 수 있는 이 일자리에 감사함을 느낀다”면서 “가장 어려운 곳에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중증장애인의 노동시장 진입이 경증장애인에 비해 훨씬 어려운 현실에서 그나마 있던 정책적 관심마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조사한 ‘2022년 하반기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의하면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23.2%), 고용률(21.8%)은 경증장애인의 절반 수준에 그쳤으며, 실업률(5.9%)은 1.7%P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 9월부터 피플퍼스트 광진센터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장동일(27)씨. 그림을 좋아하는 장씨는 동료들의 초상을 그리는 프로젝트 ‘장동일이 간다’를 진행 중이다. 그는 “동료지원가로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퇴근하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 좋았다”면서 “사업 폐지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2022년 봄부터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참여자로 동료지원가들을 만나고 있는 조석준(23)씨. 그는 “이곳 센터에서 동료지원가들에게 상담 받고 소통하는 동안 스스로 변화하는 걸 느꼈다”면서 “나 또한 동료지원가가 되어 다른 중증장애인을 돕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는데, 사업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화가 났다”고 말했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와 서울센터에서 3년째 참여자로서 동료지원가들을 만나고 있는 임성재(31)씨. 그는 “동료지원가들을 만나면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뻤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동료지원가 제도를 폐지할 일이 아니라 더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동료지원가가 신속히 다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직장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한 당사자들은 회의적인 입장이다.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2년째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발달장애인 박경인(27)씨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아빠 얼굴도 모른 채 시설에 보내진 뒤로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는데, 동료지원가 활동을 계기로 친구들과 함께 일하면서 버겁고 힘들던 것들이 사그라들었다”면서 “자기 결정권을 갖게 해준 이 일자리가 사라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고, 지금 이 일상을 지속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절망스러워서 견디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군포시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는 정태민(26)씨는 “동료지원가 제도는 제가 태어나서 줄곧 시설에만 살다 자립해서 사회에 나왔을 때 사람들과 제대로 대면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면서 “가장 소외되고 열악한 곳에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챙기지 못하는 이 현실이 서글프다”라고 토로했다.
2022년 4월부터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김현아(27)씨. 그는 “처음엔 그냥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나를 소개하고 함께 기안하는 등의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올해 8월부터 동료지원가로 근무 중인 문진희(20)씨. 자립에 관심이 많은 그는 “앞으로 쭉 동료지원가로 일하면서 자립에 대한 자조모임을 꾸려나가고 싶다”면서 “일하는 행복을 알게 해준 지금의 동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1년째 군포시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는 정태민(26)씨. 그는 “동료지원가 제도는 제가 태어나서 줄곧 시설에만 살다 자립해서 사회에 나왔을 때 사람들과 제대로 대면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면서 “가장 소외되고 열악한 곳에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챙기지 못하는 이 현실이 서글프다”라고 토로했다.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난 정씨는 장애 정도가 더 심한 형을 언급하면서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숫자놀음으로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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