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10월 5일, 중국 롱 뮤지엄 창립자 부부 소장품 경매가 열렸다. 장소는 소더비 홍콩, 경매명은 '긴 여정: 류이첸 & 왕웨이 컬렉션'. 결과는 참담했다. 프리세일 기대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그린 최후의 초상화 '폴레트 주르댕'도 예상보다 훨씬 낮게 팔렸다. 10월 9일, 아트넷은 이 결과를 '피바람'이라고 불렀으며, 아트 뉴스페이퍼는 '활기가 없던 경매'라고 평가했다. 중국 경제 전성기에 잘나가던 롱 뮤지엄은 왜 작품을 대거 홍콩에서 팔아야 했을까?
그 얘기를 하기 전 먼저 롱 뮤지엄의 급부상부터 살펴보자.
2012년 중국 미술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중국 대부호들은 작품들을 마구 사 모았다. 중국 큰손들은 아트 마켓의 VVIP였다. 그중에서도 전 세계가 주목한 컬렉터가 류이첸과 왕웨이 부부였다. 류이첸은 택시기사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업에 뛰어들며, 중국 경제 급부상에 올라타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류이첸은 일찍이 미술 경매소에 근무한 바 있는 왕웨이와 결혼한다. 제트기를 사고 싶던 류이첸에게 왕웨이는 미술 시장이 더 가치 있다고 조언한다. 그 후 이 부부는 세계적 경매에 참여, 최고의 예술품을 사기 시작했다. 상징적 경매 신기록엔 항시 그들 부부의 이름이 올랐다.
특히 유명한 사건은 모딜리아니의 작품 '누워 있는 누드'. 2018년 5월 맨해튼 경매에서 1억5,715만 달러에 낙찰받았다. 당시 역대 미술품 경매상 가장 비싼 그림 2위로 기록된다. 소장품 구매는 롱 뮤지엄 개관으로 이어진다. 류이첸은 롱 뮤지엄을 '아시아의 구겐하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리고 롱 뮤지엄 상하이 푸동관(2012)·상하이 웨스트번드관(2014)을 개관한다. 쓰촨성에 충칭관을 오픈하며 3개의 대형 뮤지엄이 들어섰다. 이를 가리켜 우리나라의 한 매체는 '롱 뮤지엄 전성시대'라 썼다. 부부는 컬렉션 전시부터 세계적 아티스트의 개인전, 지역 주민을 위한 기획전 등을 열며 전 세계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돌연 롱 뮤지엄 소장품 경매라니? 개별 소장자의 수십 점이 한꺼번에 나오는 이유는 이혼, 사망, 파산 등이다. 게다가 현대작품이나 인상파 작품들은 뉴욕, 올드 마스터는 런던에서 경매되는 관례를 깨고 홍콩에서 모두 판매한다니. '누워 있는 누드'는 경매에 나오지 않았지만 롱 뮤지엄은 모딜리아니의 '폴레트 주르댕'까지 경매에 올렸다. 이 역시 8년 전 뉴욕 소더비에서 4,28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5,500만 달러)에 구입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3,480만 달러에 낙찰되며, 롱 뮤지엄 설립자에게 800만 달러의 손실을 끼쳤다.
롱 뮤지엄의 우울한 경매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먼저 미술시장 둔화를 상징한다. 실제로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의 글로벌 경매(2023년 상반기)는 전년 동기 대비 22.7% 감소했다. 중국 경제 침체의 영향이 큰 때문이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혼란에 빠졌으며, 중국 통화는 달러 대비 16년 만에 최저다. 홍콩이 다가오는 세계 예술시장의 미래 지표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중국 경제의 변동성을 예견하는 듯하다. 이는 아시아 미술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상승과 하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롱 뮤지엄이 이뤄낸 저변 확대가 한국에서는 미술 애호가와 시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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