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세대 최고 인기 e스포츠 '롤 월드컵'
시작 전부터 구름 인파... 장내 함성 가득
많은 외국인 한국行... "축제 즐기러 왔다"
게임 쉽고 산업화 성공, 스타메이킹 비결
"대결이 시~작됩니다!"
e스포츠 세계대회 '리그오브레전드(LoL·롤) 월드 챔피언십' 본선라운드가 열린 20일 오후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 잔뜩 상기된 목소리의 캐스터가 소리치자 대형 모니터에 각종 캐릭터가 등장했고, 이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경기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LET'S GO(가자) C9!"을 연발하는 북미팀 C9 응원단에 맞서, 중국팀 LNG를 응원하는 팬들도 연신 "짜요(힘내라)"를 외쳤다. 응원하는 팀의 경기력에 따라 환호와 탄식이 번갈아 터지며 장내는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관람객 최보성(23)씨는 "롤 대회를 처음 봤는데 외국어가 여기저기 들리는 걸 보면서 엄청난 인기를 체감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월드 챔피언십은 온라인게임 롤을 가장 잘하는 팀을 가리는, 말 그대로 세계선수권이다. 월드컵에 빗대 '롤드컵'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수많은 지구촌 젊은이가 사랑하는 e스포츠다. 게다가 얼마 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팀이 금메달까지 딴 터라 이번 대회에 쏟아지는 관심과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2030세대의 롤드컵 애정은 경기장 밖에서 일찌감치 확인됐다. 이날 오후 2시 예정된 첫 경기(TL 대 NRG) 두 시간 전부터 50명 가까운 관중이 경기장 앞에 줄을 섰다. 갑자기 수은주가 뚝 떨어진 쌀쌀한 날씨에도 이들은 응원하는 팀 유니폼만 달랑 걸친 채 떨면서 오매불망 입장을 기다렸다. 경기 시작 10분 전이 되자 100명 넘는 인파가 몰려 혼잡을 빚기도 했다.
응원팀은 달라도 기대감 가득한 관중들 표정만큼은 똑같았다. 직장인 서강욱(27)씨는 "친구 4명과 함께 도전해도 표 두 장만 얻을 만큼 티켓 구하기가 치열했다"면서도 "한국팀 젠지의 도란(최현준) 선수를 직접 볼 생각에 설레는 마음뿐"이라고 웃었다. T1 페이커(이상혁) 선수의 열렬한 팬이라는 대학생 김수지(24)씨는 "굿즈 상품 중에 캐릭터 피규어가 마음에 들어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청년들은 왜 롤에 열광할까. 롤은 5명이 한 팀을 이뤄 전투를 해 상대 기지를 파괴하는 쪽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2009년 북미에서 첫 출시된 뒤 각국에 상륙했다. 현재 월평균 접속자는 1억 명을 가뿐히 넘기고, 2011년부터 매년 열리는 롤드컵은 온라인게임계 최대 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회도 매 경기 전 좌석 매진에 상금이 30억 원에 달한다.
실제 시합만 한국에서 열릴 뿐 경기장 풍경을 보면 여기가 국내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소프트웨어 기술자로 러시아에서 온 페두린 이반(27)은 "12년 동안 롤 신봉자로 살면서 롤드컵을 직접 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며 "유럽팀이 반드시 우승컵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일랜드인 스티븐(25)도 "G2와 T1을 응원하러 날아왔다. 경기장에 못 들어갈 위기가 있었는데 한국 관객분이 도와줘 다행히 입장할 수 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국팬들의 자부심도 못지않았다. 12번 열린 롤드컵 우승컵만 7개. 하지만 2018년 직전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한국팀이 모두 탈락한 탓에 이번 롤드컵을 대하는 한국팬들의 얼굴에선 투지가 느껴졌다. 취업준비생 김모(24)씨는 "한국팀이 우승해 설욕해야 한다"고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롤이 글로벌 인기 게임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게임 방법이 어렵지 않다. 160개에 육박하는 캐릭터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데다, 매번 새로운 변수를 맞닥뜨려 쉽게 질리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여기에 세계 각국에서 리그를 운영하고 있을 만큼 상업화에 성공해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또 스타선수 이미지 메이킹에 집중한 전략 덕분에 굳이 게임을 즐기지 않아도 스타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를 챙겨보는 팬층이 두꺼워졌다. 박성희 한국외국어대 글로벌스포츠산업학부 교수는 "개인을 중시하는 젊은 층을 겨냥해 특정 선수를 위한 스토리 영상, 굿즈 등을 만들어낸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그래도 시합은 시합일 뿐. 취재에 응한 관중 누구나 "롤드컵은 축제"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류정환(23)씨는 "KT(한국)의 오랜 팬인데, 전날 져서 너무 슬프다"면서도 "패배하면 아쉽지만 롤을 좋아하는 외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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