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폭증에 중동 불안 겹치며 검문 강화
'자유로운 국경 이동' 공동체 근간 '흔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서로 국경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는 '역내에서는 사람·물자의 이동을 자유롭게 한다'는 솅겐 협정과 모순된다. EU 27개 회원국 중 아일랜드를 제외한 26개국이 솅겐 가입국이고, 이는 EU를 정치·경제 공동체로 만든 근간이었다.
국경 통제는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난민들이 유럽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다 '우리 나라'까지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중동에서 대규모 난민이 유입될 가능성이 커지고, 테러리즘 위협도 늘어나며 국경 통제 강화 흐름이 거세졌다.
이에 '솅겐 협약 무용론'과 함께 'EU 공동체 위기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경 검문 강화" 이탈리아→슬로베니아 도미노로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안사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전날 "21일부터 열흘간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을 통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슬로베니아를 통해 이탈리아로 입국한 난민이 올해만 약 1만6,000명으로 추산돼 검문 강화가 시급하다면서다.
'동유럽에서 유입되는 난민을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이탈리아에 늘 있었지만, 지난 7일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결단을 자극했다. 특히 지난 16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총기를 난사해 2명을 죽인 것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튀니지 출신 이민자로 밝혀진 것도 명분이 됐다. 그는 솅겐 협정 덕에 불법 체류자 신분에도 EU 내 최소 4개국을 자유롭게 오갔다.
이탈리아의 결정은 슬로베니아로 번졌다. 슬로베니아는 같은 날 "헝가리,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을 21일부터 최소 열흘간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중동,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튀르키예, 그리스 등 이른바 발칸 반도 육로를 따라 크로아티아, 헝가리를 거쳐 입국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주변국들은 반발했다. 시야르토 페테르 헝가리 외무부 장관은 "국경 통제는 국경 간 사업 운영을 방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크로아티아도 "일시적 조치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국경 검문 강화 흐름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도 국경 통제를 고려 중이다.
'개별국 결정사안'이지만 '이례적'... "솅겐, 무너졌다"
국경 통제가 솅겐 협정 위반은 아니다. 협정엔 '개별국은 내부 안보 위기가 발생하면 국경을 일시 통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전례 없는 조치도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국제회의, 스포츠 행사 등을 계기로 이뤄진 것이었다. 시리아 내전 등으로 유럽에 난민이 대거 유입된 2015년에도 지금과 비슷한 국경 통제 도미노 현상이 나타난 적이 있다.
EU는 솅겐 협정의 위기를 걱정한다. 게르하르트 카르너 오스트리아 내무부 장관은 "솅겐은 죽지 않았지만 무너졌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도 슬로베니아, 헝가리와의 국경 통제를 다음 달부터 실시한다. 페테르 장관은 "유럽이 분열된 시대로 돌입할 수 있다"며 "회원국들이 서로 국경을 닫아 걸 게 아니라 EU와 외부 사이의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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