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오 죽음아, 늙은 선장아, 때가 되었다! 닻을 올리자! / 우리는 이 나라가 지겹다, 오 죽음아! 출항을 서둘러라! / 하늘과 바다가 비록 잉크처럼 검더라도, / 네가 아는 우리 가슴은 빛살로 가득 차 있다! // 네 독을 우리에게 부어 우리의 기운을 북돋아라! / 이 불꽃이 이토록 우리의 뇌수를 태우니, / 지옥이건 천국이건 무슨 상관이냐? 저 심연의 밑바닥에, / 저 미지의 밑바닥에 우리는 잠기고 싶다, 새로운 것을 찾아서!"
낙엽을 치우는 빗자루 소리가 둔해진 시간 감각을 깨웁니다. 왠지 첫눈보다 첫 낙엽(?)에 '올해도 다 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을 돌아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시집에 손이 가나 봅니다. 삶을 여행에 빗댄 샤를 보들레르(1821~1867)의 시 '여행'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장시의 마지막 두 연을 곱씹다가 적어 봅니다.
시 '여행'은 인생을 드넓은 세계로 떠나는 항행에 비유합니다. 설렘으로 여정을 시작한 화자가 도처에서 본 것은 "숙명의 사닥다리 그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불멸의 죄악이 걸린 그 권태로운 광경"들입니다. "피가 양념을 치고 향을 뿌리는 잔치" "저마다 하늘로 기어오르는 이런저런 종교들" "제 재간에 취한 인류" 같은 것들이죠. 그럼에도 화자는 정박하지 않고 '죽음'이란 선장에게 닻을 올리라고 명합니다. 당시 자본주의가 꽃피던 화려한 프랑스 파리를 지옥처럼 여겼던 보들레르에게 죽음은 절망보다는 오히려 가능성이었죠. 그 결심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이 시는 현대시의 시작이라 불리는 시집 '악의 꽃'의 수록작입니다. 특히 이달 출간된 완역판은 평생 프랑스문학 연구에 헌신한 황현산(1945~2018) 선생이 타계 직전까지 작업한 결과물이라 그 무게감이 남다릅니다. 이 시집을 읽은 당신은 어떤 항로를 따라 어디로 향할지 궁금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