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박사의 쓰레기 이야기]
생산 감축 규제에 '신중한 접근'한다는 정부
감축 의지 없다면 '플라스틱 빌런' 낙인 우려
편집자주
그러잖아도 심각했던 쓰레기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주민 간, 지역 간, 나라 간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쓰레기 박사'의 눈으로 쓰레기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짚어보려 합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의 저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한국일보>에 2주 단위로 수요일 연재합니다.
정부는 지난 19일 플라스틱 오염 국제협약에 대한 대응방향을 밝혔다. 협약이 제정될 수 있도록 기여하되 우리 산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해외 수출시장 확보의 기회로까지 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발표에서 신재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 설정 및 폴리염화비닐(PVC) 등 특정물질에 대한 일률적인 규제 조항 신설에 대한 방침이 논란이 되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강한 협약 체결을 목표로 하는 국가 및 전문가·환경단체들은 204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에 대한 분명한 목표 설정과 PVC 등 유해 플라스틱 생산 퇴출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신중한 접근’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신중한 접근은 사실상 우리 산업계의 이익 보호를 위해서 반대하겠다는 의미다.
원론적인 내용을 배제하고 보면 결국 국내 산업계 보호를 위해서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규제 도입은 반대하면서 재생원료 생산 확대 중심으로 협약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화학적 재활용을 통한 재생원료 생산 역량을 키워 석유화학 산업의 활성화의 계기로 삼겠다는 야심도 보인다.
플라스틱 원료 생산 업체 대상으로 생산량을 기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려면 플라스틱 원료를 사용하는 식품산업 등 최종 수요 업체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즉 생수 페트병 사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 없이 페트병 원료 생산량만 줄일 수는 없다.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해서 산유국들에 석유채굴량 감축 목표를 부여하기가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려면 개별 국가 단위로 원료 생산량을 줄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원료-가공-소비로 이어지는 생산사슬 전체를 관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플라스틱 원료 생산 및 수출 국가이기 때문에 원료 생산량 감축 목표 설정 논의가 부당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환경부 보도자료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국제 환경질서를 선도하는 중추 국가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좀 더 다른 ‘신중한’ 표현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는 협약의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려면 플라스틱 원료 생산 감축이 플라스틱 사용 및 소비 감축 목표와 연계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 스스로 플라스틱 사용 및 소비를 얼마나 줄일 것인지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환경부는 다회용기 보급을 통해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겠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규제 강화를 통해서 확실하게 제대로 줄이겠다는 언급은 꺼린다. 오로지 열분해 등을 통한 재생원료 생산 확대만을 이야기하는데,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등의 규제도 약한 상태에서 이것도 제대로 될까 의심스럽다.
플라스틱 협약의 진정성은 재생원료가 아니라 감축에 대한 각 국가별 태도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플라스틱 협약에 대한 진정한 산업정책은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산업시스템 전환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플라스틱 빌런 국가로 낙인찍힐까 두렵다. 플라스틱 협약 제정을 위한 마지막 5차 회의가 내년 하반기 서울에서 개최되는데, 한국이 플라스틱 오염종식을 선도하는 중추 국가로서 마지막에 박수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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