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퀘이사와 블랙홀 등 온갖 천체를 품은 '우주'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대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우주에 대한 탐구 작업과 그것이 밝혀낸 우주의 모습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역대 최고였던 천문학 학술대회
암흑물질 넘어서는 새로운 가설
젊은 과학도, 진로 걱정에 한숨만
지난주 제주도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천문학회의 추계학술대회가 열렸다. 매년 장소를 바꿔 열리는 이 대회에는 천문학회 학술대회 사상 최대 규모인 약 420명 학자가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여러 학자가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한 발표를 하고, 발표세션 중간의 휴식 시간에는 서로 토의하며 학술교류를 한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 성과의 수준은 해외 학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꽤 높아 국내 학계의 역량이 많이 성장하였음을 느꼈다. 이번 학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우주론 연구에 대한 발표였으나, 학회 참석자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것은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한 걱정이었다.
과거 우주 모습을 밝히고 우주의 미래를 예측하는 연구를 우주론 연구라 한다. 현재 우주는 138억 년 전에 있었던 빅뱅이라는 우주 팽창의 산물이며 빅뱅 이후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십억 년 전부터는 그 팽창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현대 우주론이 보여주는 우주의 모습이다. 인류가 이런 지식을 갖게 된 것은 20세기부터 본격화된 대형 망원경의 건설과 2차대전 후에 있었던 전파천문학의 발전, 그리고 그 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우주망원경 탐사 등 수많은 연구 덕분이다.
그래서 우주론은 노벨상의 보고가 되었다. 이 분야와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연구에만 노벨상이 4차례나 주어졌다. 사실 현대 우주론이 밝혀낸 우주 가속팽창은 중력이 우주의 힘을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일이다. 중력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력)이라, 이 힘만 생각한다면 우주가 팽창해도 은하와 은하가 중력으로 서로를 잡아당기면서 팽창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감속팽창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우주가 가속팽창하려면 우주에 서로를 밀어내는 척력처럼 작용하는 미지의 에너지가 존재해야 한다. 그것을 암흑에너지라고 부르며,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 중력방정식에 도입했던 우주상수라는 것이 굳어져 가던 정설이었다.
그런데 이번 학회에서는 우주상수를 넘어선 획기적 설명이 두 가지나 나왔다.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 그룹이 은하의 대규모 분포 연구에서, 연세대학교 이영욱 교수 그룹이 초신성 자료의 재분석을 통해 암흑에너지가 우주상수가 아닌 제5원소 같다는 결과를 독립적으로 제시했다. 우주상수가 암흑에너지라는 그동안의 우주론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이 연구 결과의 사실 여부는 후속 연구를 통해 검증되겠지만, 재미있는 화두를 던진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중력파우주연구단에서 중력파 천체를 이용한 우주론 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며 대형 국제협력 프로젝트인 우주시공간탐사(Legacy Survey of Space and Time)에도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이 여러 명 참여하면서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밝히려 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R&D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는 소식은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다. 예컨대 한국천문연구원의 '우주와 천체의 기원' 연구 예산을 39.1 %가량 삭감하는 방안이 진행 중이다.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오죽했으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학부 학생들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성명서까지 내겠다고 필자를 찾아와 하소연하는 일까지 있었겠는가. 기초과학 예산 삭감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다행스럽게 생각하나, 여전히 마음은 놓이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이 과학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돈을 벌고 싶어서보다 과학이 우주 수수께끼를 밝혀주고 인류의 발전도 이끄는 매우 흥미로운 지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뜻있는 일을 걱정 없이 할 수 있게 장려해야 과학을 하려는 인력도 늘어나고 나라의 역량도 함께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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