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기: ④외국인 희생자 26명의 유족]
정보도, 안내도 없는 고립감 속에서 고통
"한국 정부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분통
편집자주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 중엔, 26명의 외국인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이 좋아, 한국이 안전한 나라일 것이라 믿으며, 거리축제를 즐기다 화를 당했습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가족을 떠나보낸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은 여전히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선 사후 수습 과정에서 소외된 외국인 유족 목소리를 무시할 순 없습니다. 한국일보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을 만났습니다.
이란인 마나즈 파라칸드(64)는 요즘 "어둠 속을 헤매는 기분"이라고 했다. 같은 아픔을 나눌 사람도 그에겐 없다. 파라칸드는 1년 전 한국의 서울 한복판에서 조카 알리 파라칸드(당시 36)를 잃었다.
6,653㎞, 비행기로 7시간을 날아야 닿는 나라에서 2022년 10월 29일 이란인 5명이 숨졌다. 모두 한국이 좋아 이역만리 타국에서 꿈을 키워가던 젊은이들이었다. 외국인도 스물여섯 명이 사망한 참사에서 이란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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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1주기를 맞아 파라칸드와 역시 동생 소마에 모기미 네자드(32)가 희생된 마나즈 모기미 네자드(40)를 최근 화상으로 만났다. 두 사람이 현재 겪는 고통은 그저 가족을 잃은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어 뉴스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고, 유품은 어디서 건네 받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이도 없다. 한국 정부의 지원도 내국인에 치우쳐 있다. 아직 혈육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이태원 파티 가요" 메시지가 마지막
알리와 소마에는 중앙대 대학원에 다녔다. 각각 도시공학자, 지하수 관련 연구자로 일할 미래를 그리며 향학열을 불태웠다. 가족들은 왜 한국을 유학지로 택했는지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시민의식이 높은 모범국가'라고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이태원 참사는 굳건한 믿음을 산산히 부숴버렸다. 가족들은 이란 현지 뉴스와 페이스북을 통해 참사 소식을 알았다. 5시간 넘는 시차에도 매일 해외메신저로 가족과 연락을 주고 받던 알리와 소마에는 12시간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었다. 이태원에 간다며 환히 웃는 사진을 보낸 게 알리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소마에 역시 친구 둘과 이태원에서 열리는 파티에 갈 거라는 메시지가 끝이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생사를 몰랐다. 결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사망자 중에 알리가 있나요?"
"네, 사망자가 맞습니다."
가족은 유족이 됐다. 알리가 한국에 온 지 석 달, 소마에는 1년 1개월 만이었다.
'모르쇠' 일관 한국 정부... 답답한 유족들
죽음의 과정과 이유, 사후 처리 등 유족에겐 지금도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알리 가족은 이달 2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주이란한국대사관을 찾았다. 유족이 기댈 유일한 창구였다. 대사와 면담하고 싶어 방문예약까지 했지만, 부임 한 달밖에 안 된 직원만 만날 수 있었다. 파라칸드는 "한국행 비자 문제 해결은커녕 아이가 죽은 원인에 대한 답조차 들을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네자드도 "참사 당시 폐쇄회로(CC)TV를 살펴보고 싶었으나, 이란 정부를 거쳐 한국에 요청해도 불가하다는 말만 들었다"며 답답해했다.
1년 전에도 그랬다. 참사 2주 뒤 알리의 주검이 도착한 공항에는 이란 주재 한국대사가 나왔다. 유족은 "사고가 왜 났느냐"고 물었지만, 대사관 직원들은 "우리도 모른다. 알아봐주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30일 질식으로 인해 사망'이라고 적힌 진단서와 장례비, 구호비가 한국 정부가 해준 전부였다.
스스로 밝혀내야 했다. 한국어 영상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참사 관련 정보를 얻으려 번역기를 돌려가며 영어 기사를 샅샅이 훑었다. 외신의 관심이 수그러들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조사 보고서를 읽기도, 한국 정부와 소통하기도 쉽지 않았다. 유족별로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지원하던 한국 외교부의 정책도 더는 진행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버팀목은 외국인 유족을 돕는 시민단체뿐이다. 조인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태원참사 테스크포스(TF) 변호사는 "3월부터 국가별로 3개월마다 한 번씩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유족은 매달 대화하기를 원했으나 여건상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것도 14개 국가 중 연락이 닿는 5개국 유족만 미팅에 참여하고 있다.
유품 정리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국에 있는 차, 물건, 은행계좌를 찾는 일부터 인수까지 모든 과정을 변호사를 선임한 뒤 위임장을 작성해 한국대사관에 내야 했다. 절차에 드는 비용도 그때 그때 이란에서 융통되는 미국 달러로만 해결 가능했다. 결국 알리 유족은 유품을 한국에 기부했다. 두 희생자가 참사 당시 입었던 옷조차 받지 못했다. 네자드는 "동생 물건을 한국에 와서 정리해야 된다는 얘기를 듣고 막막하기만 했다"고 전했다.
치유되지 않는 고통... "진실 밝혀야"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충격은 외국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네자드는 정신과약과 수면제를 달고 산다. 한 달에 한 번씩 심리치료도 받는다. 알리 엄마 역시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비 지원은 국내 병원에 한정돼 있어 모두 자비로 고통을 달래야 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공단 측이 의료비를 대납해 주는 방식이라 한국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껏 의료비를 지원받은 외국인 유족 사례는 1건(30만 원)에 불과하다.
화상으로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시행하는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 통역과 비대면 상담의 한계 탓에 이용률(8건)은 현저히 낮다. 조 변호사는 "외국인 유족은 서로 위로할 기회가 적고, 본국의 관심도 떨어져 고립감이 더 크다"며 정부에 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유족의 마음 속 응어리는 쉬이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만약 당신의 피붙이가 외국에서 숨졌는데 이유도 모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파라칸드는 조카의 죽음 자체보다 그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현실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눈에는 희생자가 개미 한 마리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알리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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