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인식·의학적 견해 변화"
일본 최고재판소가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수술을 해야만 호적상 성별 변경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현행 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성전환자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에서다. 2019년에는 같은 법을 합헌으로 봤지만 4년 만에 결정을 바꾸었다.
2004년부터 시행된 ‘성정체성 장애 특례법’은 법적 성별 변경을 시도하려면 고환과 난소를 제거해 생식 불능 상태가 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26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최고재판소는 전날 재판관 15명의 만장일치로 이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가 없는 일본에선 최고재판소가 한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겸한다.
"성소수자 사회적 이해 확산"
특례법은 트랜스젠더가 성별 변경을 신청할 때 △18세 이상이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여야 하며 △미성년자인 아이가 없어야 하고 △성 정체성 장애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생식선과 생식능력이 없고 △새로 선택한 성별의 성기와 유사한 모양의 성기를 가져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마지막 두 가지 조건을 갖추려면 수술이 필수다.
성전환 신청자에게 생식 불능을 요구한 건 “성전환자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혼란스러워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최고재판소는 2004년 이후 성전환자가 1만 명을 넘어섰지만 성전환으로 인한 부모와 자녀 사이의 혼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봤다.
성별 분류의 기준은 생식기의 기능이 아닌 당사자의 정체성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성전환자들이 수술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그런데도 국가 차원에서 생식 기능을 제거하는 수술을 강요하는 것은 자유와 인권의 침해라고 최고재판소는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4년 일본의 성전환 수술 의무 규정에 반대 성명을 냈다.
'외관 요건'이 남은 불씨
다만 최고재판소는 생식기의 외관을 수술로 바꿔야 한다는 특례법상 조항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은 채 고등재판소(고등법원)로 보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 단체인 ‘LGBT법 연합회’는 “그 요건까지 철폐되지 않으면 구제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우려한다. 그간 일본 법원은 여성에서 남성이 된 사람들은 호르몬 투여로 생식 기능을 잃으면 성전환 자격이 있다고 본 반면, 남성에서 여성이 된 사람들은 음경을 절제해야 성전환 자격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자민당 보수파와 우익 세력은 “공중목욕탕이나 화장실에서 여성들이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조항 유지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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