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霜降)도 지났다. 겨울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주변의 가로수에도 단풍이 물들어간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가을의 정취가 가득하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가을이 아쉬워 경기 연천군 댑싸리공원을 찾았다. 댑싸리는 7, 8월 한여름에 꽃이 피는 일년생 초본식물로 1.5m 내외로 자라며, 이를 재료로 마당을 쓰는 빗자루를 만든다. 가을엔 단풍이 들면서 붉은색으로 변해 관상용 식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 도착한 댑싸리공원은 붉은색 댑싸리가 현란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색뿐만 아니라 다양한 파스텔 톤의 댑싸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을 다해 말라 있는 황톳빛 댑싸리도 석양에 빛나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색깔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경은 인공적인 물감으로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림 같은 풍경화 속에는 손을 잡은 다정한 연인들, 수다를 떠는 학생들, 그리고 노모를 모시고 온 중년 부부의 모습이 담겼다.
형형색색의 댑싸리공원을 보고 있노라니 그 빛깔 하나하나가 인간의 삶을 떠오르게 한다. ‘초록색 댑싸리’는 여름날 빛났던 청년시절을, ‘빨간색 댑싸리’는 인생의 황금기인 중년을, ‘황토색 댑싸리’는 황혼을 맞이하는 노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해가 마지막 산 고개를 넘자 불타는 노을이 품은 댑싸리가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도자기를 굽는 불가마 속에서 단단히 굳어가는 달항아리 같았다. 그래서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둥그레지고 단단해진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